[동대구로에서] 보수와 진보의 죽음

  • 이춘호
  • |
  • 입력 2020-07-15   |  발행일 2020-07-15 제26면   |  수정 2020-07-15
백선엽 장군과 박원순 시장
보수와 진보의 두 죽음 앞
금이 가버린 친일과 도덕
한국 민주주의 미래위한
진영탈피 리더십 절실해

2020071301000531700022321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장맛비 속에 두 개의 죽음이 어른거렸다. 서울시장 박원순과 백선엽 장군. 같은 한국인이라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한쪽은 진보, 한쪽은 보수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대장이었고 6·25전쟁(다부동전투)의 영웅이었던 백 장군. 그의 한 세기는 보수 그 자체였지만 끝내 현충원 시비에 휩싸이고 만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친일행적이 그의 빛을 가로막았다. 박 시장의 일생은 보수가 잉태했던 각종 허물을 진보란 부품으로 교체하는 데 할애한다. 보수가 키워낸 자식이 바로 그 진보였다.

성피해자를 위한 변호인 출신이기도 했던 박 시장. 하지만 정작 본인도 성문제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다. 노무현·노회찬처럼 자살로 끝낸 그의 진보적 신념 또한 얼룩지고 말았다. 누군 그 자살을 진보의 양심, 누군 그 자살을 진보의 자폭이라 했다. 하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그런 자살은 아니다. 그 자살이 '책임의 등가물'이었기 때문이다. 둘의 죽음은 미완(未完)이고 '반쪽 장례식장'의 주인공이란 점만 닮았다. 그래서 보수·진보의 국치(國恥)로도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나라에는 네 개의 치명적 이념의 덫이 핵폭탄처럼 매설돼 있다. 친일(日)·친미(美)·친중(中)·친북(北). 가장 악령 같은 게 '친일과 친북의 덫'이다. 그건 그 누구도 악마로 만들 수 있는 저주의 주홍글씨다.

몇년 전 일제강점기를 살아온 한 지역 원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솔직하게 '일왕이 항복선언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패전국 일본 국민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로 들렸다. 독립은 멀고 친일이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모든 일에는 국면과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친일 처단도 때를 놓치면 민폐를 넘어 '국폐'가 된다. 지금 잣대로 그때를 단죄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난 그게 '형식적 분풀이'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자칫 '과거사를 앞세운 코스프레'가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친일'이란 용어조차 일본의 잔재 아닌가. 과거사에서는 악마였던 그들이지만 전자제품, 음식 등 경제적 범주에서는 '천사'로 등극하기 일쑤였다. 일본의 틀 안에서 일본을 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독립운동가가 원하는 나라는 이씨조선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만의 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 미국과 중국·소련과 아웃소싱을 해야만 했다. 아직도 이 나라는 그들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그런 영토에서 갑이 된 진보와 보수도 치명적 약점은 갖고 있었다. 도덕과 비도덕을 동시에 강요당한다는 점이다. 그 위선의 덫을 벗어나는 방식 또한 각기 다르다. 진보는 함께 투쟁하고 문제가 되면 자살 등 혼자 책임지려 한다. 하지만 보수는 모든 걸 책임지는 자살을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버팀수의 저력(?)도 그런 욕망의 연장인가? 보수는 미래란 욕망, 진보는 현실이란 욕심에 진다. 서로 '보완재'임을 모르는 둘은 결국 약자다.

지난 주말 진보는 자신이 신봉하던 그 '도덕', 보수는 자기에게 한때 영화를 보장했던 '친일' 때문에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두 이념을 꼬아 만든 대한민국이란 동아줄. 그게 둘을 위한 '포승줄'로 보였다.

장맛비가 내려도 두 진영의 그늘은 도무지 씻겨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았다. 저 두 죽음이 가만히 '민주적이란 말이 얼마나 자기 진영적인가'를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진보도 금이 가고 보수도 체면을 구긴 장례식장. 과연 당신의 애도는 누구의 몫인가?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오피니언인기뉴스

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