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 영남일보 특별기획-2부-대구의 문화예술] (4) 전쟁의 폐허에 울려 퍼진 바흐의 음악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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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6 07:53  |  수정 2021-06-28 14:23  |  발행일 2020-07-16 제21면
"황폐해진 한국서 진지한 음악의 잔재 모든 것이 여기에…"

6·25전쟁 당시 대구의 한 음악다방에서 틀어주는 클래식 음악을 들은 외신기자들이 놀라워하며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린다'고 타전했다는 이야기가 음악인들 사이에 회자되어 왔다. 그 음악다방이 향촌동에 있었던 '르네상스'다. 이 '르네상스'에 대한 기사가 실린 음악잡지를 2018년 여름 대구음악협회(회장 이치우)가 인터넷 경매를 통해 확보했다. 미국의 음악잡지 '에튜드(Etude)' 1953년 10월호다. '코리아 콘체르토(Korea Concerto)'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는 두 쪽에 걸쳐 게재되어 있다. '르네상스' 입구 사진을 비롯한 세 장의 관련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에튜드'는 1883년 창간되고 1957년까지 발간된 미국의 음악잡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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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대구 향촌동에 있었던 '르네상스' 관련 기사가 실린 미국 음악잡지 '에튜드(Etude)'(1953년 10월호)의 지면.

기사는 1952년 겨울 어느날 '르네상스'를 방문해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을 신청해 듣고는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던 그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르네상스'의 분위기와 주인 박용찬에 대한 이야기, 소장 음반에 대한 놀라움, 당시 한국 클래식 음악 상황 등을 담고 있다.

미군 병사로 보이는 엘킨스(Robert M. Elkins)와 제닝스(Gary Jennings)가 쓴 이 기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이 작은 뒷골목 가게는 모든 남한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성지가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 대구 클래식 음악계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지난겨울 어느 추운 밤, 우리는 몇몇 다른 미국인 및 20여명의 한국인들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고 램프가 켜진, 대구의 뒷골목에 숨겨진 가게에 앉아서 전세계적 언어의 리사이틀을 감상했다. 그날 밤 우리는 리스트의 음악과 북유럽의 빙산을 산산이 부수는 그리그의 트럼펫 소리를 들었으며, 차이콥스키가 갈대 피리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


대구 뒷골목 무너질듯한 다방
美음악잡지 '에튜드'에 실린
1952년 겨울 르네상스 방문기
주인 박용찬과 4천여 음반 등
'남한 음악애호가들 聖地' 소개



우리의 콘서트홀은 카네기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곳은 평균적인 미국인의 거실보다 작았다. 음악은 모두 오래되고 긁힌 음반으로, 골동품 축음기에 의해 재생되는 음반이었다. 배가 불룩한 석탄 난로가 방 안의 유일한 난방기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이 작은 뒷골목 가게는 모든 남한의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성지가 되었다.

이곳은 '르네상스 다방(Renaissance Tea Room)'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렸다. 왜냐하면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에서 진지한 음악의 잔재라 할 만한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음악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다방 주인 박용찬이 서울에서 음반 4천여 장을 대구로 가져와 르네상스를 연 내용 등을 설명한 뒤 다음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음악 애호가, 학생, 작곡가 및 음악가들이 이 소박한 교향악과의 만남(랑데뷰)을 위해 밤이면 모인다. 그때가 우리의 르네상스 첫 방문이었고, 우리는 쇼팽·폰 베버·오펜바흐에 이르는 선율적 계승을 오가는 박용찬의 컬렉션 범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신청곡을 부탁하기로 결심했으며, 단지 실험을 위해 한국에서 발견하기 가장 가망이 없어 보이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정했다. 우리는 우리의 신청곡을 건네주고 돌아와 결과를 기다렸다.

방 저편 벽에는 선반이 달려있고 이 선반에는 음반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북이 쌓여 있다. …… 그러나 그날 밤, 적어도 그 방은 청중들에게서 나온 길고 황홀한 '아~아~!'라는 탄성과 대비되는, 장엄하고 천둥 같은 주제 부분이 갑자기 울려 퍼졌다. 재생된 음악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고 음반은 끊임없이 틱틱거렸지만 모두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의 시작 부분을 알아듣는 것으로 보였다."

필자들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신청한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곡을 찾아 들려준 사실과 함께, 청중들이 그 음악을 알아듣자 놀라움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글을 마치고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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