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윤수<시인> ...베스트 테일러, 전태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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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0   |  발행일 2020-07-21 제25면   |  수정 2020-07-24
사윤수
사윤수시인

강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는 그 강을 다 건너와서 뒤돌아볼 때이다. 들을 수 없고 보이지 않고 가고 없는데, 여기에 남아 메아리치는 목소리가 있다. 전태일의 삶은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녔으므로 어둡고 추웠다. 그러나 그 그늘의 꽃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그는 애타게 학업을 원했으나 학교에 얼마 다니지 못했다. 오로지 홀로 많이 공부하고, 불면으로 깨우쳤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이 문장은 전태일이 쓴 두 번째 유서의 한 구절이다. '모든 나는 그의 친구들이며 노동을 함께한 노동자들이며 가족이며 세상 사람들이다.' 전태일은 유서를 세 번 썼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이미 결심하고 쓴 세 편의 유서는 마지막으로 건너가기 위해 스스로 던져 놓는 비장한 돌다리처럼 느껴진다.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그가 시시포스를 알았던 몰랐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곧 시시포스였기 때문이다. 이 삶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그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뼈저리도록 절절하다. 


세상을 떠나고 싶어 떠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떠나야만 하기에 떠나고 떠나지 않을 수 없기에 떠나는 것이다. 끝없이 굴려 올려도 덩이가 목적지에 올려 지지 않자 전태일은 자신이 덩이가 되고자 했다. 스스로 불타고 불덩이가 되어 이 세상의 고단하고 수척한 노동자들을 환하게 비추는 도구가 되고자 했다. 전태일의 유서는 한 편의 시고, 한 존재의 영혼의 집이다. 1970년대 가난하고 학업이 짧고, 섬유 노동자고 스무 두 살이었던 남자의 글이라고 밝히지 않는다면 그의 유서는 명망 있는 어느 외국 작가의 시를 유려하게 번역한 작품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의 첫 번째 유서에는 다음의 문장이 나온다. '완전한 형태의 안정을 구하네/ 아주 완전하게 안정된, 그 순간은 향기를 발하는 백합의 오후였다고 이야기를 나누게.' 헐벗고 다반사로 굶기까지 하던 그가 놀랍게도 '향기를 발하는 백합의 오후라고 썼다. 백합의 오후는 천국을 뜻할까. 아니면 평온한 죽음의 재를 뜻할까. 어쨌든 그 오후는 백합처럼 순백한 시선만이 발견할 수 있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자만이 이를 수 있는 시간이다. 서른 살 전에 요절했고 명작을 쓴 시인으로 이상과 기형도, 랭보와 게오르그 트라클을 꼽기도 하는데 전태일의 유서는 기형도와 트라클 쪽을 닮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대를 넘어 그들의 영혼은 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물심양면 내내 버겁고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이 쓴 글이나 전태일 평전들을 읽다보면 그의 본래 근원은 맑고 밝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지점이다. 그는 염세주의자거나 비관적이지 않았다. 매사에 열정적이며 치열하게 살았다. '안네의 일기'처럼 그에게도 설레는 사랑과 희망이 있었고, 따스한 해프닝들도 있었다.


오는 11월13일은 전태일 50주기다. <재>대구 '전태일의 친구들'에서는 전태일 옛집을 매입하고 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 중이다. 전태일 식의 밝음과 희망이 그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동력이 되면 좋겠다.
사윤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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