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서 시작한 파란만장 한국생활…식료품가게 열고 '제2의 삶' 활짝

  • 진정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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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9   |  발행일 2020-07-29 제12면   |  수정 2020-07-29
이주민 아노와르 후세인씨
고향에 월급 부치는 재미로 살던 방글라데시 청년, 어느덧 33세
기계사고로 중도장애인 됐지만 아내와 산단근처 가게차려 재기
코로나로 배달주문 호황…성서공동체fm에 사연 소개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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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아노와르 후세인(오른쪽)씨와 아내.

요즘 산단 주변에서 '아시아마켓'이라는 이주민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구 성서산단과 가까운 달서구 달구벌대로에서 아내와 함께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아노와르 후세인(33)씨는 22세 되던 해인 2009년 방글라데시에서 이주해 와서 지금까지 12년째 한국에 살면서 공장노동자로 시작해 어엿한 식료품 가게 사장님이 되기까지 젊은 나이에 비해 비교적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이러한 사연은 SCN성서공동체fm 라디오 방송국(이하 성서공동체fm)에서 방송하고 있는 기획시리즈 7부작 '라디오 사람책 My life in korea'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지난 5월 소개되어 전파를 타면서 유튜브나 개인 블로그에서도 회자되어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아노와르씨는 인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실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여덟 식구가 3개월에 한 번 정도만 닭고기 반찬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만큼은 어떤 부자 부럽지 않았다. 여느 이주노동자처럼 돈을 벌기 위해 5년 정도 계획으로 2009년 한국에 왔다.

월급 타서 고향 집에 보내는 재미로 고달픈 하루하루를 버텼다. 고향에 잠시 머무는 동안 2011년 지금의 아내를 맞이했으며 결혼 한 달 만에 다시 돈벌기 위해 임신한 아내를 고향에 남겨 둔 채 재입국했다. 아노와르씨는 2012년 1월 딸 리하가 태어나면서 아빠가 되었지만 공장 일이 바빠 고향 집에는 가지도 못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버티게 한 것은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딸과의 영상통화였다. 그렇게 영상으로만 만나던 딸 리하를 돌이 다 되어서야 품에 안을 수 있었는데 그때를 그는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오가던 5년 정도의 생활을 정리하고 출국을 3개월 정도 앞둔 2014년 어느 날 공장에서 일요일 특근을 하던 그는 왼팔 팔꿈치까지 기계에 말려 들어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대구 W병원에서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했고 그 후로도 뼈이식을 비롯한 10차례에 걸친 수술을 하느라 3년의 세월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는 "그래도 한국에서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에요. 방글라데시에서 사고를 당했으면 의료 기술이 부족해서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잘라야 했을 거예요"라면서 중도 장애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금의환향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잠시 연기되었지만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북부정류장 근처에서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당시에는 돈도 떼이고 손해도 봤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게의 규모도 차츰 늘릴 수 있었다. 지금은 아내가 가게를 보고 그는 주로 트럭에 식료품을 싣고 다니면서 기숙사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팔기도 하는데, 배달 일이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성서산단 인근에 있는 가게에서 멀리 경북 고령·영천 등지로 영업범위가 넓어져 배달 일은 자정이 훌쩍 지나 한두 시가 되어야 끝이 난다.

코로나19는 그에게 동전의 양면처럼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대구에 코로나가 심해지던 지난 2월에 9세 된 딸 리하를 외가집에 보내고 한두 달 지나 코로나가 숙지면 데려오고자 했는데 이제는 방글라데시에서 더 많은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딸 리하가 엄마아빠가 있는 한국에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슬픔을 조금이나마 보상하듯 그의 주요 고객인 이주노동자들이 코로나로 인해 기숙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식료품 주문량이 폭주하면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코로나가 하루빨리 끝나서 사랑하는 딸 리하를 한국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와 한 울타리에서 함께 사는 것"이라며 오늘도 열심히 대구경북을 누비며 배달 일을 하고 있다.

한편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는 전국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대상으로 '콘텐츠 경쟁력 강화 지원 사업'을 올해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성서공동체fm이 이주민의 이야기를 다룬 기획 시리즈 7부작 '라디오 사람책 My life in korea'라는 주제로 공모에 신청하여 선정되었다. 개국 이래 15년째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이주민과 함께하는 방송을 지향해 온 성서공동체fm은 시청자미디어재단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작비를 지원받음으로써 첫 번째 주인공 아노와르씨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성서공동체fm이 제작한 '라디오 사람책 My life in korea'에서는 지난 5월25일 아노와르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는 11월까지 한 달에 한 편씩 7편의 다양하고 개성있는 이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까지 총 3편의 라디오 사람책이 소개되었는데 지난 27일에는 네팔에서 한국에 온 지 8년 된 성서산단 이주노동자 '아십씨와 그의 친구들과의 좌충우돌 유튜브 제작 이야기'가 소개되어 다시 한번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성서공동체fm 김상현 본부장은 "이제는 우리 선주민들도 이주민들을 이해하기 위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며 다문화 시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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