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 영남일보 특별기획-2부-대구의 문화예술] (6) 화가들의 제2의 고향, 대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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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30 07:53  |  수정 2020-07-30 07:55  |  발행일 2020-07-30 제18면
피란작가, 대구에 뿌리내려…신석필·전선택·서창환 대표적

신석필
월남 작가 중에서 대구에 정착해 지역 미술계에 뿌리를 내린 대표적 작가인 신석필·전선택·서창환 선생(왼쪽부터). 〈영남일보 DB〉

1950년에서 1953년 휴전까지 대구에는 전쟁을 피해 피란 온 중앙화단의 작가와 북에서 월남한 작가들이 다수 머물렀다. 전쟁의 최후 보루였던 피란지 대구와 부산에서는 전쟁의 폐허에서도 전국에서 모인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모여 예술이 꽃을 피었다. 이때의 대구 화단은 다음 세대를 잇는 '교체 시기'였다. 일제 강점기 대구 근대화단의 결실과 1960~1970년대 현대미술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 사이의 간극을 잇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한 시기였던 셈이다.

작고한 서양화가 정점식은 1950년대 전쟁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통해 대구 미술계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6·25전쟁이 터지고 서울의 피란 작가들이 그것은 화가뿐 아니라 시인이나 문학가, 음악이나 연극, 영화에 이르는 많은 예술인이 대구에 몰려오면서 문화적인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미술계는 오세창, 이상범, 이순석, 박성환, 전병덕, 신석필, 문선호, 김형구, 이중섭. 나는 이들을 수시로 만날 기회를 가지고 예술론을 주고받으면서 작가 생활에서 겪은 귀중한 경험과 인격을 확인했다."

지역 작가들과 피란 작가들의 이러한 교류가 침체된 대구 미술계를 활성화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고 이들의 활동이 앞으로 전개될 대구미술의 새로운 변화에 초석이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월남작가단, 종군화가로 참여
향토 작가들과 교류·전시회도
지역에 정착해 제자들 길러내
대구미술 변화 초석 자리매김


의재 허백련(1951년)과 청전 이상범(1952년)이 대구에 머물며 개인전을 개최해 동양화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월남 작가 함대정(1953년)과 박성환(1952년)은 대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중섭도 1955년 대구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피란·월남 화가들은 미군의 초상화를 그린다든지, 부산에서는 도자기 회사에서 도자기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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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제31호 국제보도에 실린 종군화가전 수상작품.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월남화가단이나 종군화가단에 참여했다. 월남화가단에는 최영림, 이중섭, 정규, 함대정, 박항섭, 박성환, 윤중식, 신석필, 한묵 등이 참여했다. 이들 중 일부는 전쟁 중에 대구에서 조직된 '대구화우회'(1952~1954년)나 '미국문화원 제5주년기념 축하미술전람회'(1953년)와 같은 전시에 지역 작가들과 함께 교류했고 자극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대구에 정착해 대구 미술계에 뿌리를 내린 월남 작가들도 있다. 신석필, 전선택, 서창환 선생이 대표적이다.

신석필(1920~2017)은 황해도 봉산 사리원에서 태어나 해주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8년에서 1950년 사이 그는 평양국립미술학교 조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로운 작품 제작과 발표가 차단된 북을 떠나 1950년 12월 1·4후퇴 때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스케치북과 도시락 한 개만 들고 부인과 함께 월남했다.

그는 부산을 거쳐 1950년대 중반부터 대구에 정착해 이과전, 구상전, 이상회전 창립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적 화풍을 확장한 신구상 경향으로 나아갔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그는 고향을 그리는, 향수 어린 주제와 색채를 자주 썼지만 이후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의 주제와 감정·표현에 충실한 작품세계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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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택 작 '환향'

전선택(1922~ )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평북 오산중에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을 만나 미술에 눈떴다. 이후 가와바다(川端畵) 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귀국해 1945년 평안북도 곽산초등학교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하지만 지주 집안이었던 그는 정권의 박해를 받아 일찍이 1946년 월남했다.

처음에 충북 영동중 미술교사로 부임했다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김천농림고에서, 1954년 이후에는 대구 경상중과 대륜중에서 25년여간 교편을 잡았다. 제자를 사랑하는 참스승으로서 그는 제자였던 김진태, 김익수 등의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주제로 과장 없는, 담백하고 순수한 묘사, 주제에 대한 명료한 표현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세계를 이뤘다.

서창환(1923~2014)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나 1943년 일본대학 미술과를 졸업했다. 대지주였던 그의 가족은 광복과 함께 고향에서 추방됐다. 그는 1946년 영주와 1948년 포항에서 교편을 잡았고, 1959년 경북중과 1968~1988년 영남중·고에 근무하면서 대구에 정착했다. 그는 대구에서 이상회 창립과 상형전 등 구상화 그룹에 참여했다. 그는 일관되게 푸른 배경에 수직의 나무를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불변무상의 나무의 형상에서 생명의 본질을 터득하고, 하늘로 뻗은 나무를 통해 수도하는 것과 같은 신심을 형상화했다.

이들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면서 생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 곳이다. 비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지만, 대구에서 제자를 키우고 이곳 작가들과 함께 어울리며 향토 미술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대구 미술계의 어른으로 지금도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도움말=박민영 대구미술관 수집연구팀장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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