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군은 정부기조에 휩쓸리지 말아야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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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4   |  발행일 2020-08-04 제26면   |  수정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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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기자〈서울본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 국보 보물전' 기획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풀(pool) 취재를 나간 적 있다. 풀 취재는 행사가 있을 때 출입 기자들이 번갈아 가며 대표로 하게 되는데, 보통의 경우 문 대통령의 발언까지 취재가 가능하다. 이날 행사는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 행사여서 대통령의 동선이 유동적이고 돌발 발언도 생길 수 있어 행사 시작 1시간 반 전에 박물관에 도착해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그때 문득 '혹시 북한이 나쁜 마음을 먹고 문 대통령을 해하려 한다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해봤다. 대답은 불행하게도 '가능하다'였다. 청와대 경호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최근 월북한 김모씨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행태에 상당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은 과연 그들의 말처럼 확고한 안보·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걸까.

군 당국이 김씨의 월북 사실을 공식 확인한 건 지난달 2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가 있은 지 8시간이나 지나서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방송이 없었다면 김씨의 월북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다. 보고 체계도 난맥상이다. 합참은 월북하는 김씨가 군사 장비에 포착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국방부 장관은 모르고 있었고, 국방부 장관이 김씨의 월북을 인지한 것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였다.

전 북한 외교관을 지낸 고영환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여러 번 남측 땅을 드나든 사람을 아는데 처음에는 떨렸지만 경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안 뒤에는 경찰에게 인사까지 했다고 들었다"며 "전문 훈련을 받은 북한 공작원이 한국으로 침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해 충격을 던졌다. 탈북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24시간 가까이 경찰 경호를 받는 그는 "자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그가 북한 공작원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게 무섭다"고 했다.

대북평화 기조를 문제 삼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찬성하는 쪽이 많다. 다만 군까지 정부 기조에 휩쓸려 안보에 대한 스탠스를 분명히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걱정한다. '약한 군대'로의 전락을 두려워한다.

올해 최초로 국방 예산이 50조원을 넘어섰다. 돈이 넘쳐난다고 '스마트 부대'에만 골몰할 게 아니다. 첨단 장비보다 중요한 건 군의 기강이다. 완전한 평화가 오기 전까지는 적성국가와 마주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상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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