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遷都論(천도론)의 민낯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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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5   |  발행일 2020-08-05 제26면   |  수정 2020-08-05
청와대·국회의 세종시 이전
지역균형발전 신호탄 전망
정략적 흥정대상돼선 안돼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쪽엔
서울공화국 귀족들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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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주장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예상대로 미래통합당과 수도권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정부 여당이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의 과오를 엄폐하고 2022년 대선에 승리하기 위한 충청권 표심 모으기 작전이라거나, 관습헌법상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헌법재판소의 2004년 판결을 위배하는 것이라는 것 등이 주된 반대 논리다.

흥미로운 것은 영남권 출신 정치인들이 봉건시대에나 있음직한 '천도(遷都)'라는 표현으로 행정수도 이전 불가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대목이다. 홍준표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을 민주당의 대선 전략용 천도론으로 폄훼하면서 차라리 '평양천도계획수립'이 더 필요하다는 어깃장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재오 전 의원은 역사적으로나 대내외적으로 서울이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로 각인되어 있는 만큼 천도는 불가하다고 역설한다.

여당의 갑작스러운 행정수도 이전 주장에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행정기능의 분산 배치를 천도론으로 둔갑시켜 대응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논리는 더욱 궁색해 보인다. 전근대 유교문화권 국가에서 수도는 단순히 왕궁과 관아 및 군대가 밀집한 정치적 중심만이 아니었다. 수도를 의미하는 '京'은 천명을 수행하는 군주의 혈통과 정치적 권위의 신성성을 보증하는 정신적 중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기존 수도를 버려야 하는 천도는 종묘사직으로 대변되는 국가적 정체성을 일신하는 지난한 작업으로써, 왕조의 교체나 국가의 변란을 모면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 정치인들의 현대판 천도 불가론에 따른다면 행정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한양 천도를 주창한 조선시대 무학대사라도 소환해야 할 듯하다.

천도이건 행정수도 이전이건 공통으로 대두되는 문제는 보수 기득권층의 자기 이익 지키기다. 조선왕조 건국 직후 태조가 한양 천도를 반대하는 중신들이 실은 개경에 뿌리를 둔 토착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이라는 지적은 대표적 사례다. 광해군 4년에 제기된 '교하천도론' 역시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좌절된 또 하나의 사례다. 이러한 현상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중국 북위시대 효문제가 493년 평성으로부터 낙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이다. 효문제는 낙양 천도를 통하여 대륙 통일의 야망을 품었지만 천도로 인한 세력 약화를 염려한 토착 귀족들의 집요한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자 남쪽의 제(齊)나라를 정벌한다는 구실로 귀족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낙양으로 남하한다. 이후 귀족들에게 천도에 동의하지 않으면 전쟁을 벌여 목숨 보전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는다. 이에 귀족들이 굴복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낙양을 수도로 선포해 버린다. 보수 야당과 언론이 행정수도 이전 불가 사유로 들이대는 각종 거대담론의 민낯에서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서울 공화국 귀족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닌가.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의 신호탄일 뿐이다. 인적·물적 자원의 망국적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고사 상태에 빠진 지역의 균형발전 요구는 더 이상 정략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지역에서 표를 구걸하여 서울사람 흉내 내는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대구경북을 포함한 모든 지역이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시스템의 구축에 힘써야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 대안 없는 어깃장 비판을 야성으로 착각하며 수권정당을 꿈꾸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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