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백화점 안과 밖의 밥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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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6   |  발행일 2020-08-06 제27면   |  수정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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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장마가 절정이던 지난달 28일, 대구신세계백화점 건물 아래로 긴 줄이 늘어섰다. 행렬 앞에는 무료급식차가 희미하게 보였다. 한 무리의 노숙자들이 보였고, 늦은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위해 나온 어르신들도 줄지어 서 있었다. 가던 길을 멈췄다. 그리고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장대처럼 쏟아졌다. 처마처럼 벽 상단이 살짝 튀어나온 백화점 건물 아래는 유일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거대 자본의 건축법은 뜻하지 않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었다.

밥을 받아 든 사람들은 다시 건물 밑으로 줄지어 앉았다. 그들은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허겁지겁 허기를 채웠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몸을 반쯤 굽힌 채 서서 밥을 먹었다. 코와 입을 막았던 마스크는 턱에 걸려 턱받이가 되었고,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 국물이 마스크를 적셨다. 마스크를 적신 빨간 국물은 상처처럼 선명했다. 비는 직선으로 내리다 말고 흩뿌리며 국물 위에 뚝뚝 떨어졌다. 음식을 넘길 때마다 목울대가 꿀렁거렸고, 그 모습은 실루엣처럼 아련했다. 백화점의 웅장한 벽에는 'Hello Summer'라는 문구와 함께 피서를 떠나는 동물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 비를 피해 쪼그려 앉은 채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이 적막했다. 이들에게 재난은 코로나19가 아닌 듯했다. 쏟아지는 장맛비가 전염병보다 더 성가신 재난처럼 보였다.

노란 우산을 쓴 남녀가 팔짱을 끼고 깔깔거리며 급식행렬 옆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리고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백화점 안에는 고객들로 붐볐다. 바깥의 장대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했다. 고객들은 소비하면서 허기진 욕구를 채워 나갔다. 욕구를 채울수록 쇼핑백은 하나둘 늘어났다. 그리고 편안하게 식당에 앉아 메뉴를 골랐다. 입과 코를 막은 마스크는 깨끗한 일회용 종이 위에 올려졌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종업원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내려놓았다.

이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맛을 음미하며 아주 여유 있게 한 끼를 해결했다. 식사 후에는 테이크아웃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백화점 이곳저곳을 돌며 다시 쇼핑했다.

이날 필자가 지켜본 백화점 밖과 안의 밥은 같으면서 달라 보였다. 허기를 채우고 배설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풍경이 내재한 현실은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었다.

백화점 밖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그들에게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공허할 뿐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쏟아내는 정책은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로지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하고, 빨간 국물 묻은 마스크를 며칠 동안 더 써야 할지 모른다. 경제가 좋든 나쁘든,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사각지대'다.

백화점 안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이들은 달라 보인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들에게 대통령의 말은 직접적이다. '경제를 살리고, 집값을 잡겠다'는 선언에 따라 그들의 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와 세습 빈곤은 토착화된 지 오래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민낯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전염병은 가난한 사람을 집중 공격한다'라는 말이 현실화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말과 정책은 사각지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장마가 한창이던 그날, 백화점 밖과 안의 풍경은 되새길수록 편치 않다.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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