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중심 국립극장 직속 연구단체…대구경북 공연예술 발전에 큰 족적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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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6 08:05  |  수정 2020-08-06 08:08  |  발행일 2020-08-06 제18면
■ 대구연극 발전 씨앗 뿌린 '영남연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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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영남연극회가 입센 50주기를 맞아 공연한 '인형의 집' 신문광고. <출처: 이필동의 새로쓴 대구연극사〉

대구국립극장 시절, 대구 연극 발전의 씨앗을 뿌린 그 중심에 '영남연극회'가 있다.

서항석 대구국립극장장 지도로 만들어진 영남연극회는 국립극장 직속 연구단체로 대구연극 활성화를 위해 대구에서 연극을 하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2차 약 60명의 연구생을 뽑아 6개월간의 수련과정을 통해 연기자를 배출했다. 당시 대구경북 대학생 청년들이 많이 지원해 전문적 연출 연기 이론을 배웠다.

향토 출신 권혁진, 이상언, 김산운, 김대한, 김시현 등이 멤버로 참여했으며 연출은 최현민이 주로 맡았다. 영남연극회는 창립기념 공연으로 입센 50주년 맞이 '인형의 집'(최현민 연출)을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 관객들에게 큰 감명을 안겼다. 이후 '양자강의 애화'(최현민 연출) 등을 공연하며 향토의 젊은 연극도를 배출하기 시작했고, 이후 많은 극단들이 창단됐다.

영남연극회 멤버였던 김대한 전 대구영화인협회장은 "같은 대학에 다니던 연극배우 이상언의 추천으로 영남연극회에 가입하게 됐고, '양자강의 애화'에 출연했다. 최현민은 연극배우로 6·25 때 국립극장을 따라 대구에 피란 와 연출을 맡으면서 크게 인정받게 됐다"면서 "당시 국립극장인 대구키네마는 동양 최고의 극장이었다. 회전무대에 분장실과 조명시설이 잘돼 있었다"고 예전을 회상했다.

국립극장이 서울로 옮겨간 후 영남연극회가 힘을 잃게 되자 권혁진, 이상언, 김대한, 김봉환 등이 주축이 돼 '신극동인협단'을 발족해 '별' '별들의 고향' 등을 공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이들 영남연극회 회원 다수는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 스태프로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영화계로 넘어가게 된다.

김삼일 연출가는 "영남연극회는 극을 연구하는 단체로 대구 연극 발전의 인맥 형성과 지역 공연예술 발전이라는 큰 발자취를 남겼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들도 모두 '영남연극회'에서 실력을 쌓은 스승과 선배들의 직·간접 영향을 받아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항석 극장장은 서울 환도 후에도 제1기 국립극장 연기자 양성소를 모집한다. 영남연극회의 연장선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김금지, 이치우, 오지명 등 쟁쟁한 배우들이 배출됐다"고 덧붙였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공동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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