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병하(독립지사·1943년 안동농림학교 대한독립회복연구단원)...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기다리는 마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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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2   |  발행일 2020-08-13 제25면   |  수정 2020-08-13
장병하
장병하 애국지사

지난 7월20일, 나는 정말 뜻있는 모임에 참석했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발기인 대회가 그것이다. 발기인으로 참석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무대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게 된 것 또한 뜻 깊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300여명의 발기인 모두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싶다. 물론 당장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때늦은 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나서는 출정식 격인 발기인 대회가 성황리에 이루어져서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적 사실 규명은 산 자의 증언만큼 실증적 증거는 없으리라. 나는 현재 나이가 아흔 셋이다. 1943년 안동농림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비밀결사 '대한독립회복연구단'에 가입해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2년 뒤 3월10일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하다 계획이 발각돼 옥고를 치렀다. 그해 광복과 더불어 이튿날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로 출옥했다.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은 일제를 내쫓고 국권 회복하는 길을 찾자는 뜻을 모아 조직해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고 안동시내 일본인 기관 및 요인 습격 등을 투쟁 방침으로 삼아 활동했다.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했으나 포상 받지 못한 애국지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형무소에서 대기 도중 광복이 돼 재판기록이 없거나 취조와 관련된 서류가 없어 진상을 밝히지 못한 애국지사들이 상당하다. 또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한 길인 줄 알고 한순간 좌익 활동에 몸담았던 친구들은 평생을 대우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한 경우도 있다. 생존 애국지사들이 이미 고령인 만큼 보훈처는 서둘러 이들을 발굴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길 바란다. 


이제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를 새로이 밝혀 기록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대우로 그들의 정신을 높이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관과 애국심을 후손들에게 교육하고 알려서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어야 할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인식을 철저하게 심어주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신명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내가 결의문에서 밝혔듯이 대구가 독립운동의 도시임을 알리고 선열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해 나가길 기대한다. 순국선열을 위령하고 그 정신을 후손에게 전할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우리 모두 함께 나서야 할 것이다. 고령이긴 하지만 10대 때 대한독립회복연구단 조직에 앞장섰던 기개와 나라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 나도 250만 대구시민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합심해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매진할 것을 다짐 하는 바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언제나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계기로 대구시민의 단합력과 애국정신이 빛나기를 소망한다.
장병하<독립지사·1943년 안동농림학교 대한독립회복연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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