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경제개발과 국가경제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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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4   |  발행일 2020-08-14 제22면   |  수정 2020-08-14
국가주도에 의한 경제계획
자유경제와는 안맞을 수도
하지만 한정된 자본 활용해
오늘날의 산업화를 이뤄내
현재서 과거 진단땐 주의를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

에피소드1

필자는 1965년도에 대학 초년생이었다. 당시 대학은 한일회담반대 데모로 연일 시끄러웠고 필자도 선배들을 따라 한일회담반대 시위에 참여하곤 했다. 한일회담에 대한 찬반학술토론회도 곳곳에서 열렸는데 필자도 당시 인근 K대학에서 열린 토론회를 방청한 적이 있었다.

정부 고위인사를 초청한 그 토론회에서 학계를 대표한 교수들은 한일회담을 하면 매판자본이 국내에 유입되어 일본에 종속되기에 회담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때 정부에서 온 고위관료는 해로드-도마 성장이론을 앞세우며 다음의 주장을 하였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이루어 잠재실업을 해소하려면 연 7%는 성장해야 한다. 자본계수가 2.5라고 가정할 때 연간 투자율은 GDP 대비 최소한 17.5%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저축률은 예를 들면 연 5% 정도밖에 되지 않아 연 12.5%는 외자도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신용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나라가 없고 미국의 원조도 줄어 한일회담을 통해 청구권자금을 받아 경제건설자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그때 필자는 경제원론도 듣기 전의 백지상태 경제학도였지만 정부고위관료의 논리가 매우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에피소드2

1969년 필자는 대학원생이었다. 후에 박정희 대통령 때 중용되어 부총리까지 지낸 N교수 밑에서 거시경제를 배웠다. 그분이 어느 날 우리에게 페이퍼를 나누어 주면서 읽어 오라고 하였다. 체너리 교수의 저술로 성장, 물가, 국제수지 간의 동태적 trade-off에 관한 이론이었다. N교수는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입안하는 데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과정에서 원자재와 자본재수요가 많아 만성 적자에 빠져있어서 정부가 언제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어 자립경제를 달성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N교수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대입하여 계산을 해보게 하였다. 계산 결과 만약 연 7%의 성장을 한다고 가정하면 국제수지균형은 86년, 그 이하로 성장하면 70년대 말, 그 이상으로 성장하면 90년대 가서야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나왔다. 사실 69년 당시 우리에겐 80~90년대라면 너무나 요원한 미래라고 여겨질 때였다. 그럼에도 N교수가 그 trade-off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그가 어떻게 대통령께 보고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7% 성장으로 86년 사상 초유의 국제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그 이후 민주화정부가 들어서서 다시 적자경제로 전환되었지만….

우리나라 경제개발과정에서 정책개발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N교수는 우리에게 당부한 말이 있었다. "경제학도는 이념주의자가 되기보다는 경제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러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7차 5개년계획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DJ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개발계획은 박정희모델로 여겨져 폐기처분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 시점에서 볼 때 국가주도에 의한 경제계획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정된 자본으로 성장,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산업화를 이루어야만 했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기획 하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산업화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를 진단한다는 것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고 하겠다.
이영세 전 대구사이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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