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밀양시 '반계정'

  • 류혜숙
  • |
  • 입력 2020-08-28   |  발행일 2020-08-28 제36면   |  수정 2020-08-28
반석 위의 오래된 집…마루에 걸터앉아 본 협문 속엔 川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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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앉은 반계정. 이곳에 앉으면 흔들림도 없이 물 위에 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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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본 협문. 그 속으로 천이 흐른다.

긴 장마 동안, 그 오래된 집 담장가 목백일홍 꽃봉오리는 무사하였을까. 그 집을 지키던 후손은 분명 사랑방 앉은뱅이책상 앞에 장승처럼 앉아 콸콸 흐르는 단장천과 어린 꽃봉오리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을 게다. 그러한 동안 하얀 풍산개 반돌이는 안채의 쪽마루 아래에 엎드려 주인의 옆얼굴을 살폈을 테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러다 문득 거짓말 같은 빛이 반짝 날 적마다 그 집을 떠올렸다. 밀양 단장천 변의 반계정(盤溪亭). 거대한 반석 위에 올라앉아 있던 그 집.

산림처사 지냈던 반계 이숙
사냥갔던 매 돌아오지 않자
매 찾은 곳서 만난 川에 반해
물 바라보며 앉은 곳 터잡아
아불마을 지나서 천 건너면
절벽 아래 좁은 콘크리트길
모퉁이 돌면 보이는 반계정
목백일홍 꽃봉오리가 반겨
두꺼운 반석이 터이자 기단
방문서 보이는 담의 높이는
냇물 마주하는데 걸림 없고
반계정에 앉자 물에 뜬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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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의 목백일홍 꽃봉오리들이 매달려 있다.

◆ 반석 위에 앉은 집

아불교를 건너고 다시 단장천을 가로지르면 정각산 아래 범도리 아불마을이다. 옛날에는 작은 주막거리였다는데 지금도 여전히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천변 길을 따라간다. 정자나무 아래 앉아계신 할머니들의 시선이 잠깐 낯선 차를 쫓는다. '산새들'이라는 물가의 조막만한 들을 지나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크고 작은 강돌이 깔린 길이다. 잠시 갈등을 하다 차를 버려두고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다. 천 건너로 이런 저런 집들이 보이지만 물소리만 들릴 뿐 이 길은 꼭 다른 세상 같다.

절벽 아래로 좁은 콘크리트길이 시작된다. 천으로 몸을 누인 나무를 지나 벼랑 모퉁이를 돌자 바윗돌 위에 막돌로 석축을 올리고 흙돌담을 두른 건물이 나타난다. 좁고 가파른 계단 위 협문은 잠겨 있고 담장 너머로 팔작지붕의 서까래가 훤히 보인다. 계단 옆에는 목백일홍이 무수한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다. 개 짖는 소리 들린다. 벌써 이방인의 기척을 알아챈 녀석은 담장 안쪽에서 분주하게 서성이며 짖어댄다. 협문이 끼익 열리며 개를 어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좁고 긴 마당을 앞에 두고 건물이 앉아 있다. 뒷산에서 앞쪽 개울로 이어지는 거대한 반석이 통째로 터고 기단이다. 넓고 두껍고 강철처럼 강인한 반석이다. 그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올렸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 집, 반계정이다. 협문은 정자의 마루와 마주본다. 마루에 걸터앉으면 협문 속으로 천이 흐른다. 천으로 향한 방문을 열면 담장 너머 곧장 천이다. 냇물과 마주하는데 걸림 없는 높이의 담이다. 반계정에 앉으면 흔들림도 없이 물 위에 뜬 듯하다. 반계(盤溪)는 시내를 받침대로 삼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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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 이숙의 '반계정원운' 현판.

◆ 은자의 거처

반계정은 영조 때 산림처사로서 명성이 높았던 반계(盤溪) 이숙(李潚)이 1775년에 지은 정자다. 어느 날 매 사냥을 하던 중 날려 보낸 매가 돌아오지 않더란다. 그가 매를 찾은 곳이 이곳 반계정 터다. 반계는 가만히 앉아 있는 매와 함께 흐르는 천을 바라보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십년을 경영하여 작은 집을 짓고/ 난간에 기대어 낚싯대 드리우니 석양이 되었네/ 영산에서 캐는 약초는 신선을 불러오고/ 고야에서 흘러오는 물은 속세의 정을 멀리하네/ 눈 어두워도 오히려 바둑은 잘 보이고/ 귀 먹어도 반석에 떨어지는 여울소리는 잘 들리네/ 은자들이여 이곳 계산의 경치를 말하지 말라 고기 잡고 나무하는 것 벼슬과 바꾸지 않겠노라.'

반계정은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지만 그 뜻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고반이 시냇가에 있으니(考盤在澗), 석인의 마음 넉넉하도다.(碩人之寬)'라는 시구에 있다. '고반'은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하고 '석인'은 덕이 있는 아름다운 사람을 뜻한다. 반계는 과거에 뜻이 없었고 저술을 남기는 것조차 싫어하여 남아있는 문적이 없다. 단지 후손들이 시와 제문 몇 편을 수집하여 엮은 문집 한 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포(竹圃) 손사익(孫思翼), 태을암(太乙庵) 신국빈(申國賓), 죽북(竹北) 안인일(安仁一) 등과 도의(道義)로 교제하였고 강좌(江左) 권만(權萬),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 등이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치암은 그에 대해 '맑고 간결하며 욕심이 적었고, 익히는 것과 숭상하는 것이 세속을 초월하였다'라고 한다. 죽북은 '가난한 사람은 반계를 대하면 굶주림을 잊었고, 병든 자는 반계를 바라보고 그 아픔을 잊었다'고 하였다. 설령 어느 정도 과장된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마저 지극한 존경의 의미 아니겠나. 그는 석인이었고 반계정은 고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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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계정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은 화재로 소실돼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는 반계의 7세손 이종형씨가 살고 있다.

◆ 온기를 가진 옛집

정자의 왼쪽에는 살림집인 안채와 대문간이 있고 오른쪽에는 반계가 독서하던 별당인 반계정사(盤溪精舍)가 위치한다. 반계정은 옛 모습 그대로이고 나머지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반계정 현판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글씨다. 진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이다. 정자에는 여러 문인들의 시판과 함께 빗자루, 쓰레받기, 수건, 밀짚모자, 파리채 따위가 걸려 있다. 아궁이 벽이 검다. 충실하게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반계정에는 반계의 7세손인 이종형(李宗衡)씨가 반돌이와 함께 살고 있다. 가만, 그 개 이름이 반돌이가 맞나? 벌써 기억이 아슴푸레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반계는 82세 때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僉知)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수직(壽職)되었고 88세의 장수를 누렸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오복을 갖추었고 나이와 벼슬과 덕을 겸하였다고 칭송했다. 그의 묘지명은 허섭(許涉)이 지었고 묘갈명은 서애 류성룡의 아들인 계당 류주목(柳疇睦)이 지었다.

대문 아래 천변으로 내려서면 터가 제법 넓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들, 그리고 목백일홍이 긴 세월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목백일홍의 수령이 3백여 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늘 좋은 천변에는 몇 개의 평상이 놓여 있고 풍취 좋은 나무 아래에는 고요히 의자가 앉아 있다. 치암이 쓴 반계정의 12 풍경이 있다. '남쪽 들판의 벼 향기/ 북벽의 기이한 암석/ 앞 시내에 비치는 달 / 옛 성에 떨어지는 노을/ 정각산 나무꾼의 노래 소리/ 범도 마을의 밥 짓는 연기/ 매봉에 핀 봄꽃 / 사연암의 단풍 든 담쟁이/ 곰소에 내리는 저녁 비/ 어부의 고기 잡는 불빛/ 문암길 돌아가는 승려/ 조양산 기슭의 풀 먹는 소떼.' 치암은 이곳을 어슬렁거리며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고 했다. 반계정을 떠난다. 벼랑의 모퉁이를 돌아 나갈 때까지 협문 닫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 언양, 표충사 방향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 해 1077번 지방도를 타고 표충사 방향으로 간다. 석전 버스정류장을 지난 뒤 아불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범도 보건진료소 앞을 지나 계속 들어가면 아불마을이다. 마을 초입 단장천 강둑으로 난 좁은 소로를 따라 가면 길 끝에 반계정이 자리한다. 일부구간은 비포장 길이라 주의해야 한다. 반계정 정문 아래에 주차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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