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 정치칼럼] 번지수 잘못 찾은 대통령의 '코로나 분노'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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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24   |  발행일 2020-08-24 제26면   |  수정 2020-08-24
1차 유행 때 대구 탓하더니
이젠 보수책임이라는 정권
할인쿠폰, 임시공휴일 지정
잘못된 시그널 보낸 文정부
누가 코로나 방역을 망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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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21일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눈엔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입으로 독한 말들을 내뿜었다. "방역조치를 방해하는 일이 아주 조직적으로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현행범 체포라든지 구속영장 청구라든지 엄정한 법 집행을 보여주길 바란다." 대통령이 분노하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은 담화를 내고 "방역 활동을 악의적으로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선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최고형을 구형하겠다"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이 언급한 '방역조치를 조직적, 악의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은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일 텐데, 정권 주변에선 일부러 전체 보수 진영을 연결시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코로나 감염 폭발이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극우단체'에서 시작됐다"라고 했다. 민주당은 전 목사가 과거 황교안 전 대표 등과 집회를 같이 열었던 점을 들어 미래통합당 책임론을 연일 제기한다. 대통령부터 행정부, 여당까지 코로나 2차 대유행을 보수 탓으로 돌리는 '코로나 정치'에 열중하는 셈이다.

팩트 체크를 해보자. 일단 신규 감염자가 다시 세 자릿수를 넘기기 시작한 14일 직후 8·15 광복절을 맞아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건 사실이다. 몇몇 보수단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주최했고 전광훈 목사가 연설도 했다. 이날 참가 인원은 통신 3사 기지국 파악 기준으로 5만명 안팎. 사랑제일교회 전체 신도수가 2천~3천명이고 보수단체들은 회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니 일반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집회였다. 그런데 문재인정권은 국정주체들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분노해서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까지 코로나 재확산에 책임져야 할 '극우'로 몰아버렸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광화문 광장 바로 옆 종각에서 집회를 연 민노총 회원 2천여명에겐 검진을 받으란 통보조차 안 했다.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에 광장에서 집회를 주최한 보수단체는 신중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전광훈 목사도 그곳에 신도들과 함께 참석하고 방역당국의 명단 제출 요구에 적극 협조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과 통합당, 특히 참다못해 반(反)문재인 목소리를 내려고 광화문 집회에 나간 시민들을 싸잡아 2차 대유행의 주범으로 모는 건 정권의 철면피 같은 책임회피다.

잠복기를 감안하면 코로나 2차 대유행의 징후는 7월 말부터 있었다. 서울시 통계자료를 보면 '감염재생산지수'(환자 1명이 감염시키는 사람 수)가 7월 셋째 주부터 1.05를 넘으며 확산세를 예고하다가 8월 들어 급증했다. 그 시점에 정부는 전국 교회의 소모임과 식사금지 조치를 해제(7월24일)하고 소비를 끌어올린다며 8월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7월21일)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외출·소비 촉진에 나서겠다며 최근까지 284만장이 넘는 각종 할인쿠폰을 뿌렸다. 이 중 21%가량은 코로나 재확산의 고비였던 이달 중순에 집중 사용됐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 할인쿠폰은 사용된 것만 5만장에 가깝다. 중대본은 영화관을 '중위험시설'로 구분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사람들이 모이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정부 부처는 오히려 모여서 먹고 놀고 구경하라고 부추긴 꼴이다. 1차 대유행 때도 그들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초기 방역에 실패했으면서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대구와 신천지 탓이라며 펄쩍 뛰었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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