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완도 생일도·고금도 충무사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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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4   |  발행일 2020-09-04 제36면   |  수정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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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도의 아름다운 소나무.

바다는 한결같다. 쨍한 태양 아래 눈 시리게 푸른 여름바다가 아름답게 누워 있다. 짙은 녹색의 섬 그늘이 바다에 잠겨 물색은 더 푸르게 보였다. 약산도에서 생일도로 가는 뱃길 말고는 미역·다시마·김·전복을 키우는 부표가 내해를 빈틈없이 모자이크하고 있다. 퇴역이 가까워 보이는 여객선은 가쁜 엔진소리를 내며 시나브로 항로를 잘도 헤쳐 간다. 스크류가 밀어내는 하얀 포말이 마치 꿈속 나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때마다 밥사발 같은 부표들이 어부들의 꿈처럼 애면글면 흔들린다. 언제나와 같이. 저 포말이 내안까지 튀어와 흩어지면 현재의 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착각에 빠진다. 나의 살아있는 세계가 어디까지인가.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그 순간순간마다 살았다 죽었다 하는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시간의 가두리에 갇혀 헤적이고 있을 때 뱃고동 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나를 두드린다. 현실을 벗어나면 모두 환각이다. 오고감도, 나고 죽음도 없는 것인데 나는 밤낮 오고가고 죽고살고 한다. 그러니 어찌 괴롭지 않으랴.

완도 생일도에 발길 머무니…어머니가 차려준 생일 아침상, 그 즐겁던 기억이 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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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도를 찾은 관광객을 위한 생일 케이크 모형.

생일도에 도착하니 먼저 생일을 축하하는 대형 모조 케이크가 눈에 띄고 생일 축하음악이 들려온다. 아마 관광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누구라도 태어나는 날이 생일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 세상의 부귀공명을 꼭 쥐어야겠다고. 축하 케이크에 생일날이면 누구나 부르는 노래 'happy birth day to you'가 적혀 있다. 솔직히 생일은 수줍다. 저 케이크만큼 달콤한 나의 날. 언제나 생일인 생일도. 네가 태어난 날 축하해. 네가 살아 있음으로, 세상에 빛이 나고, 사랑 비애 꿈과 별 모두 네 안에 있잖아. 산과 바다 그 섬 생일도에서 이 기쁨 이 시간 흐르고 흘러서 옴니암니 케이크가 되고 생일이 되는 축복의 공간에 서서 나의 탄생을 본다. 무언가 들떠서 사진을 찍는다. 어머니의 비손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던 생일날. 그 즐겁던 기억이 풀풀 살아나 희열이 된다.

완도 생일도
뱃길 옆 채워진 다시마·김·전복 부표
관광객 위한 대형 케이크·축하 음악
백운산 일출·송곳바위 섬길 A 코스
학이 산다는 상서로운 암자 '학서암'
사찰서 내려다본 다도해 오션뷰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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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도의 둘레길과 안내판.

늘 새로운 시작, 희망이 되는 생일. 생일도 트레킹 로드 안내판을 본다.

생일도 섬 길 A코스는 생영초등~백운산 일출바위~송곳바위다. B와 C코스도 있으나 A코스 중 생영초등에서 학서암을 왕복하는 코스로 길머리를 연다. 미역·다시마·김·전복 등 이곳 해산물을 파는 가게를 지나고백운산 자락길로 접어든다. 백운산은 해발 483m로 완도와 소속 섬에서 둘째로 높다. 산이 높아 항상 흰구름이 머문다는 백운산. 산길에는 들꽃이 곳곳에 피어 있어 차츰 넓어지는 바다 조망과 함께 그지없이 상쾌한 풍경을 만든다. 학서암에 도착한다. 학이 산다는 상서로운 암자다. 1719년 창건(숙종45)했고 300여 년 동안 부처님의 말씀을 갈무리하고 퍼트린 유서 깊은 아란야다. 학서암에서 보는 다도해의 오션뷰는 감탄을 넘어 비명이 된다. 시간을 가늠하며 돌아간다. 서성항에 도착해 터미널 정자에서 배를 기다리며 생일도가 고향이라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여그 이름은 본시 산유도였는디, 해적들이 여그와서 몬땐 짓거리를 많이 혀서 살수가 없었디야, 그래가꼴랑 섬 민이 모다 모여 의논질 끝에 섬 이름을 바꿔보자 혀서 바꾼기 생일도 지라, 그 후 뒤탈없이 핑온하고 사고 없는 섬이 되야 부러소이." "그라고요. 아담한 해변이 있지라우. 모래질이 좋쿤만요. 금빛이 나는 금곡해수욕장도 볼만혀요 이. 그라고요. 용출리 갯돌도 많이 찾지라우 이." 그참에 배가 들어오고 할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린다.

고금도 충무사 발길 머무니…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잔잔한 호수처럼 수려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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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선들이 훈련하고 정박했던 고금도 앞바다.

약산도 당목항에 도착한다. 동백나무 군락지 공고지산과 삼문산의 마루금을 눈에 긋고, 섬 특유의 굽이치는 파도길을 달려 약산대교로 간다. 약산도는 조약도라고도 부른다.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삼지구엽초 등 190여종의 생약초가 자생하고 있어 도울 조(助) 약 약(藥) 자를 써서 조약도로 부르기도 한다. 약산대교를 건너서 고금도 충무사에 주차한다. 고금도 충무사 성지는 충무사와 바로 옆 월송대로 되어 있다. 먼저 월송대에 오른다. 작은 동산으로 된 월송대는 금빛 띄는 해송이 드문드문 품격을 지키고 고만고만한 섬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앞 바다가 잔잔한 호수처럼 수려하다. 이곳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83일간 임시로 안장했던 곳이다. 물론 유허지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낮게 막아 놓았고 유해를 안장했던 장소는 볼록하게 만들어 알 수 있게 했다.

고금도 충무사
이순신 장군 유해 임시 안장한 월송대
명량해전 후 고금도·묘당도 본영 설치
남해·서해 아우르는 해상교통 요충지
해상의 적 탐망할 수 있는 천혜 장소
충무공 탄신제·순국제 지내는 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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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묘 유허지.

우주에 일월성신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은 달과 별 같은 분이다. 임진왜란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선의 어둔 밤을 밝혀주는 달과 별처럼 그 역할을 한 분이다. 근자에 서울시장 박모씨가 성추행의 의혹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이자를 두둔하는 어떤 사람이 "이순신도 관노와 잠을 잤다"고 해 마치 성관계를 한 것처럼 아갈머리를 놀렸다. 이건 아니다. 이 사람은 이순신 장군을 모른다는 정도가 아니고 음해하고 비하하는 자다. 그럼 그때 상황을 알아보자. 이순신 장군이 모친상을 당해 영전에 하직을 고한 후 상제의 몸으로 백의종군하러 남쪽으로 가는 길인 정유년(1597년) 4월21일자 난중일기에 보면 "저녁에 여산 관노의 집에서 잤다(夕宿于礪山 官奴家)"라고 했다. 이 말은 관노(官奴)와 잠자리를 함께했다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관노(官奴)는 관의 남자 종이고, 관비(官婢)가 관의 여자 종이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 관리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노비가 있는 것은 법에 규정한 것이다. 국법에 의해 당시 전시였고 잘 곳이 마땅하지 않았으므로, 관에서 제공한 관노의 집에서 숙식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악의적으로 비유했다. 참으로 공분할 일이다. 만약 조선조에 이런 참언이 있었다면 이자는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1597년 9월16일 왜수군 133척과 조선 수군 13척의 명량해전에서 기적 같은 대승 이후 이순신은 이날 승전을 난중일기에 "이는 실로 천행"이라고 써두고 스스로 힘써 싸운 공을 하늘에 돌렸다. 전공을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는 것이 인심일 진데. 이순신의 이런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수요, 혼이요, 얼이다. 요즈음 잘못된 것은 남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의 과오와 실정을 호도하는 사도(邪道)의 인물들이 패거리지어 나라를 문란하게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에 비쳐보면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그 명량해전 이후 목포 앞바다 고하도에서 100일간 머물다가 이듬해인 1598년 2월17일 8천여명의 수군과 이진, 고금도와 묘당도에 본영을 설치했다. 이곳은 만·서해를 아우르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이고, 많은 백성과 군사들이 둔전을 할 수 있는 넓은 섬이며, 지남산·봉황산·망덕산이 있어 해상의 적들을 탐망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다. 그리고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이 합류해 연합훈련을 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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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충무사 전경.

인근에 있는 충무사(사적 제114호)에 들른다. 이 자리에는 처음 명나라 제독 진린이 그들의 군신인 관우장을 모시며 제향했으나, 그 후 숙종 9년(1683) 사당을 새로 지어 서무에는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고, 동무는 관우장과 진린 세 분을 기리는 사당이 되었다. 그 후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쳤으나 1945년 광복이 되고 나서 건물이 사라진 관왕묘 자리에 충무사 사당을 재건하고 정전에 충무공을 모시었다. 또 임진난 당시 가리포 첨사였던 이영남을 동무에 모시고 매년 4월28일 충무공 탄신제와 11월19일 순국제를 지내고 있다. 이 정도라도 충무공의 정신을 곰비임비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자리를 떠나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현재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붉은 이내처럼 어른거려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글=김 찬일 시인·대구힐링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 힐링트레킹 총무국장

☞문의: 완도군 관광안내소 (061)550-5151
☞내비 주소: 전남 완도군 약산면 당목길 140
☞트레킹 코스: 약산도 당목항 - 생일도 서성항 A코스 - 고금도 충무사
☞주위의 볼거리 : 약산면 삼문산 진달래공원, 고금테마공원, 장도 청해진 유적지, 장보고 기념관, 장보고 공원 해양생태전시관. 완도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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