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효 |
대구·경북에서는 그동안 대통령이 5명이나 배출됨으로써, 지역의 정치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대구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정치·교육·예술·정신 문화 및 섬유·건설산업의 중심지 역할은 현저히 사라지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대구를 떠나고 있다.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나 원로들, 산업화·베이비붐 세대 및 386세대들은 대구 지역이 이렇게 끝없이 추락하는 데 방관하고 있다. 인터넷상 대구의 가장 부정적인 단어가 '고담 도시'라는 말이다. 미래의 담론이 부재하다는 얘기다. 대구 사람들 특히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정신적 콘텐츠는 무엇인가? 바로 창의적 대구 정신의 부활이다.
역사적으로 대구는 창조적 정신의 메카다. 이곳은 신라 시대 원효 사상과 화랑정신의 발원지이며, 조선 시대에서는 영남감영이 대구에 자리잡고, 성리학자 이퇴계 중심의 영남학파가 건재함으로써 정치적, 교육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독립운동가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가 인정한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였다. 석곡 이규준, 무위당 이원세, 이육사, 이상화, 서석제, 이인성 등과 같은 뛰어난 학자와 문인 및 예술가가 탄생했다. 1960년 대구 지역 고교생들의 2·28 민주화 운동은 3·15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대구는 금 모으기 운동의 출발지였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이 부와 권력을 독식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지금보다 더 심화될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향후 경제적 불평등과 생명 기술이 결합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생물학적 불평등을 겪을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이제는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공생 가능한 방안을 새로이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역의 모든 기득권 세력은 젊은 청년 세대를 위하여 공감·공영·공생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젊은 청년들은 노동의 종말을 넘어서 직업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즉 인공지능 시대 가장 핵심적인 역량은 창의력과 인간성 회복이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이러한 근원적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 전국적으로 대구는 창업의 메카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구 사과, 청도반시, 안동 간고등어, 영천 돔배기, 대구막창, 따로국밥, 현풍 할매 곰탕, 맛찬들, 장우동, 삼송빵, 통닭 프랜차이즈, 독립 카페, 장원한자, 뮤지컬 공연 횟수 전국 1위 등이다. 독창적인 DNA가 대구 시민의 몸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다.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도시인 까닭이다. 대구에서 성공하면 반드시 전국적으로 성공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모든 것이 계획된 컴퓨터 프로그램인 알고리즘에 의하여 움직인다. 인간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조작된 알고리즘에 의하여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인간 의식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 9곳 중 5곳이 대구·경북 지역에 있다. 이처럼 영남 지역은 성리학의 중심지다. 성리학은 곧 공자 유학을 뜻한다. 공자는 논어를 통하여 인간의 심성을 얘기한다. 곧 마음 닦는 공부를 가르친다. 창의적 정신은 인간 심성에서 비롯된다.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대구의 창의적 정신이 세계 속으로 웅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루소에 의하면 청년은 두 번 태어난다고 말한다. 맞춤직업 시대 대구·경북의 젊은 청년들이 창의적 정신으로 새로이 태어나기를 희망한다.
이천효<문헌비평가·한국인재개발컨설팅 인문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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