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LH 무용론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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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30   |  발행일 2020-08-31 제25면   |  수정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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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군 주군월드 대표.

몽매한 저들은 저들만의 특별한 규율을 만들어 스스로를 '협도'(俠盜)라 칭했다.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를 목도한 대중들에 만큼은 저들의 파행이야 말로 압제적 공권력서 부터 벗어날 유일한 통로라 '착각'했을 터다. 정체가 탄로 날 까 일가족을 몰살한 홍길동의 폐해와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임꺽정의 악행은 '빈부 격차'라는 어찌할 바 없을 부패에 조금씩 희석돼갔다.  

 

'토지물권을 공공필요에 의해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공법상 공용부담'을 함의한 토지수용법이 누군가엔 '행복'이요, 또 누군가엔 '재앙'으로 점철 돼 간다. 협도라 치켜세우는 저들은 그래도 탐관오리의 부정(不正)을 벌함으로써 카타르시스라도 준다지만, 이 토지수용법이란 것은 고약하게도 서민의 땅을 취해 또 다른 서민에게 공급한다는 패러독스를 품다니,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실제 정부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주택 70만 가구와 임대주택 80만 가구 등 총 150만 가구를 서민에 공급했는데, 공급의 원류는 몇 대에 걸쳐 삶을 영위한 어르신과 귀농인, 중소사업장의 터전이 주를 이뤘다. 이들이 평생 일궈온 삶을 헐값 수용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뉘앙스에 하우스 푸어를 위한다는 정책은 또 다른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는 우매함을 반복 중이다.
 

보상금액이 낮아질수록, 대체부지의 규모가 적어질수록 어찌됐건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 봐선 대단해마지않은 '성과'일지도. 분명 여기엔 누군가엔 '엄중'하고, 또 다른 누구에겐 '엄혹' 하기만 한 특별해 마지않은 '그 법'이 버티겠지만 말이다.
 

'갑질 횡포'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갑질 청산'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LH는 "세입자 데리고 놀려니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성토하는 민원인을 향해 물병을 집어던졌다. 발주 후 사업계획 변경 등 자신의 귀책사유로 용역을 정지시키고도 계약상대자가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연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은 LH, 길 낸다며 뒤늦게 토지 수용하는 LH, 신혼희망타운 전용 주택담보대출 상품 '방빼기' 논란으로 갑질 의혹에 선 이 또한 LH다. 이 정도 민낯이 사실이라면 'LH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 또한 무리는 아닌 듯하다.
 

별스런 세금 축내는 대신, 공개입찰 등을 통해 민간기업에 공공사업의 권한을 주자는 주장이 애 먼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민간이 들어간 들 주민과의 부침은 불가피 하겠지만, 준시장형 공기업인 LH의 고착화된 몽니 보다야 민간기업의 융통성이 선례로 보나, 유유(愉愉)함으로 보나 우위에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LH의 최대주주가 대한민국 정부라 하니, LH는 134조원의 부채도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를 '주거안정을 위한 복지정책 실현'으로 변명하기에 앞서, 드러내놓고 잇속 챙기기에 매몰된 LH의 편린을 자성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 제고를 위해 병합된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되레 LH의 이름으로 '기형'이 돼버린 형국을 좌고우면 말고 직시하라는 것이다.
 

하우스 푸어의 시름을 달래줄 행복이라는 기조의 공공임대주택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행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이들이 이들과 너무나도 닮은 누군가의 불행 위에서 행복과 행운을 영글어야할 시운불행을 왜 떠안아야 하는지 가슴 아플 따름이다. 여차저차 해도 명색이 대한민국 수위 공기업이 자칭 협도 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게 이를 말 인가.
이동군 <주>군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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