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갯장어 이야기

  • 유선태
  • |
  • 입력 2020-09-11   |  발행일 2020-09-11 제37면   |  수정 2020-09-11
흉측해서 외면받고 日帝땐 어획 통제…이제는 없어서 못먹는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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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 이름도 해장어, 개장어, 이장어 등 다양하지만 갯장어를 많이 먹는 여수에서는 '참장어'라 한다. 갯장어는 머리가 뾰족하고 이빨이 날카롭다. 갯장어를 '동의보감'에서는 '해만(海鰻)'이라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때는 모양이 흉측해 외면을 받았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가을이 올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봄부터 시작된 코로나19에다 여름장마까지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몸을 지켜주는 음식이다. 남해안 바닷마을에서는 여름 보양식으로 갯장어를 꼽는다.

장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는 갯장어, 민물장어, 뱀장어, 먹장어, 붕장어, 꼼장어 등 다양하다. 이중 뱀장어목에 속하는 장어로 식용으로 이용하는 붕·갯·뱀장어를 일컬어 '장어삼총사'라 한다. 같은 뱀장어목에 속하며 붕·갯·뱀장어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바다와 강을 오가는 뱀장어(민물장어)를 제외하면 모두 바다에서만 생활한다. 횟감으로는 붕장어, 살짝 데쳐 먹는 갯장어, 몸값이 좋은 구이용으로 뱀장어를 꼽는다. 갯장어는 6~7월 중국연안과 우리 남해안에 산란하며 수심이 얕은 연안의 바위와 모래가 있는 지역에 서식한다. 낮에는 모래 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밤에 주로 활동한다.

◆ 이빨이 사나운 장어

'자산어보'에는 견아려, 속명은 개장어(介長魚)라 했다. 개이빨을 가진 장어라는 의미다. 갯장어의 이빨을 보면 이를 실감한다. 주로 암초 사이에 산다. 이름도 해장어, 개장어, 이장어 등 다양하지만 갯장어를 많이 먹는 여수에서는 '참장어'라 한다. 갯장어는 머리가 뾰족하고 이빨이 날카롭다. 갯장어를 '동의보감'에서는 '해만(海鰻)'이라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때는 모양이 흉측해 외면을 받았다. '한국수산업조사보고(1905년)'에는 '붕장어, 갯장어, 서대 등은 한국인에게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러나 갈치, 명태, 조기 등은 일본인이 하등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어서의 수요가 가장 많다'라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 어획은 물론 유통하는 것도 통제했던 바닷물고기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엽집(万葉集)'에는 '여름 더위로 지친 몸에 장어가 좋다'고 했다. 당시에는 갯장어를 잡아 일본인에게 판매했다. 당시 통영, 고성, 사천, 여수, 고흥 등 남해안에서 잡은 장어는 일본인들이 가져갔다. 심지어는 조선사람들이 함부로 잡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개이빨처럼 날카로운 이빨
붕장어·뱀장어와 '삼총사'

통영·여수 등 남해안 주산지
여름철 많이 잡히고 맛 일품
경남 고성서 전갱이로 미끼
전남 고흥서는 전어로 잡아

여수에선 데침요리 유명하고
고흥·고성에는 탕집이 많아
구이할 때는 반건조가 최고

보양식으로 수요 늘어나는데
최근 수온 영향에 어획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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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는 늦여름 최고의 복달임으로 여겨져왔다. (시계방향으로)데침을 위해 준비한 갯장어·육수에 내장이 들어가야 한다. 갯장어탕과 갯장어회.

◆입맛 아는 갯장어

갯장어는 통영, 여수, 장흥, 고흥 일대가 주산지다. 주로 6~8월에는 갯장어와 붕장어가 많이 잡힌다. 여름철에는 갯장어가 많이 잡히고 맛이 좋다. 이 시기가 되면 남해안 남해 창선도, 사천 마도, 고흥 나로도, 여수 등 곳곳에서 장어 잡는 낚시를 추리고 미끼를 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갯장어가 좋아하는 먹이는 전어와 전갱이다. 경남 고성에서는 살아 있는 전갱이를 그대로 사용한다. 고흥에서는 살아 있는 전어를 사용한다.

고흥 나로도의 한 작은 어촌에서 갯장어를 잡기 위해 주낙에 미끼를 끼우는 어부를 만났다. 오가는 사람도 없지만 어부가 간간이 던져주는 미끼 부스러기를 탐하는 갈매기만 수런거렸다. 어부가 준비한 미끼는 전어였다. '장어도 양식은 안 먹어라. 자연산 전어로 미끼를 껴야 잡혀라' 라며 식객의 반열에 오른 갯장어를 치켜세웠다. 아무거나 잘 물어 일본에서는 '하무('물다'는 의미의 일본어)'라는데 실상은 꽤 입맛이 까다롭다. 낚싯줄 500m에 150여개의 낚시를 매단다. 이를 '한 통'이라고 한다. 우선 낚시를 바구니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끼워야 한다. 고성사람들은 주낙을 정리하는 것을 '시울갈이'라고 한다.

갯장어 연승어업은 새벽에 출어를 한다. 직접 살아 있는 미끼를 잡거나 구해서 낚시에 끼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끼는 고흥에서는 전어, 고성에서는 전갱이를 많이 이용한다. 부부가 조업을 할 때는 10여통, 선원들이 있을 때는 20~30통을 지고 나가기 때문에 미끼를 채우고 출어 준비를 하는데만도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동이 틀 무렵에 차례로 주낙을 바다에 던진다. 미리 바다에 넣어 둔 연승을 차례로 건져 올린다. 주낙으로 잡은 장어는 낚시바늘을 빼지 않는다. 바늘이 끼워진 채로 낚싯줄을 자른다. 이빨 때문에 빼기도 어렵지만 하나씩 뺄 시간도 없다. 연승과 통발 외에도 저인망이나 안강망을 통해서도 잡는다.

◆늦여름 최고의 복달임을 찾다

갯장어는 장어 삼총사 중 가장 힘이 세고 강한 모양새다. 우선 주둥이가 길고 입이 크며 양턱에 날카로운 이빨이 두세 줄 있고 송곳니까지 갖췄다. 자산어보에서는 '이빨은 개 이빨처럼 듬성듬성 나 있다. 가시와 뼈가 단단해 사람을 삼킬 수도 있다'고 했다. 민물을 오가는 뱀장어와 달리 오직 바다에서만 서식한다 해서 '갯'이라는 접두어까지 달았다. 이빨이 특징이라 '이빨장어'라고 한다.

장마 끝에 늦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여행은 고사하고 맘 놓고 바깥 구경하지 못하고 꿉꿉하게 여름을 보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직장인들의 피곤함은 두세 배에 이르고 등교도 오락가락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가정주부의 짜증도 임계치를 오간다. 이쯤이면 기운을 차릴 음식을 먼저 찾아야 한다. 옛 선조들은 이를 '복달임'이라 했다. '삼복에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더위를 이기는 일'이다. 권세 높은 양반들은 궁궐에서 주는 소고기와 얼음으로 더위를 달랬다. 하지만 서민들은 개고기를 끓여 먹고 계곡이나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물리쳤다.

여름이면 갯장어를 먹으려는 목적으로 여수여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국동항과 마주한 경도는 갯장어 데침요리로 유명하다. 이외에 여수특화시장에서는 갯장어 데침을 직접 해 먹을 수도 있다. 갯장어의 척추뼈를 발라내고 칼집을 내서 잔뼈를 씹기 좋게 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다. 육수는 먼저 무, 양파, 생강, 갯장어 뼈를 넣고 끓이다 소금을 넣고 다시 두 시간여 폭폭 끓인다. 이렇게 준비해 둔 육수에 부추, 버섯, 대추, 대파, 무우 등을 넣고 끓이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은 갯장어를 살짝 데쳐서 양파와 깻잎 등으로 싸서 먹는다. 이때 된장이나 소스를 곁들이면 좋다.

장어주낙
장어용 주낙. 미끼로 전어, 전갱이 등을 꽂아둔다.

◆사철 보양식, 장어탕

전남 고흥 녹동의 선창에는 장어탕집이 많다. 철없이 잡히는 생선이라 식재료를 확보하기도 좋다. 또 추어탕처럼 끓여먹을 수 있어 뭍사람이나 섬사람이나 모두 즐겨 먹는다. 걸죽하게 끓여낸 장어탕으로 해장국을 대신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산초가루를 넣으면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고성에서는 방아잎(배초향)을 넣은 갯장어탕을 많이 먹었다. 최근에 갯장어 데침집도 생겨나 인기다. 이뿐만 아니다. 회무침, 매운탕, 국, 구이, 죽 등도 가세한다. 탕에는 반드시 방아잎이 들어가야 하며 구이를 할 때는 반건조한 갯장어가 좋다.

고흥 일대에서는 여름철만 아니라 가을철에 갯장어를 많이 먹는다. 가을철에 뼈가 억세지고 기름기가 많아 회나 데침으로 먹기 어렵지만 탕으로 먹기는 더욱 좋다. 혹자들은 가을전어를 팔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며 진짜 갯장어 맛은 가을철이라고 한다.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했던 갯장어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 인기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온의 영향인지 갯장어잡이가 신통치 않다. 덩달아 가격은 천정부지다. 남성에게 보양식, 여성에게 미용식으로 알려져 수요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동해안의 대구가 사라지듯 남해안에서 갯장어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오늘 나의 식탐이 내일 아이들에게서 장어맛을 빼앗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젓가락이 멈추질 않는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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