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sh)

  • 유선태
  • |
  • 입력 2020-09-11   |  발행일 2020-09-11 제36면   |  수정 2020-09-11
모로코의 '붉은 진주'…천재 디자이너가 사랑한 정원은 오아시스 같았다

clip20200828134552
마조렐 정원의 연못.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이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첫 여행국은 모로코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30분 만에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첫인상은 깔끔했다.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픽업한 벤츠 승합차가 생각보다 많이 낡아 보이는 것이나 예약한 공항 근처 호텔의 진입로를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맨 것 외에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모로코에서의 첫 행선지는 마라케시였다.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까지는 약 250㎞. 두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모로코에서 가장 좋은 도로라고 하니 3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야자수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선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뻗어 있었다. 역시 큰 불편함 없이 순조롭게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마라케시는 아틀라스 산맥 북쪽 기슭 하우즈 평야에 위치해 있다. 인구 93만명(2018년 기준)의 모로코 제4의 도시이다. 마라케시는 아랍어로 '서쪽 지방에 있는 땅'을 의미하며 흙의 색깔과 건물의 바깥벽이 온통 붉은색이어서 '붉은 도시' 혹은 '붉은 진주'로 불린다. 중세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도시는 1062년 베르베르족 알무와히드 왕조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하여 한때 쇠퇴했다가 1520년 사드 왕조의 도읍지가 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남부 모로코와 알제리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기점이면서 북서 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중심지인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학술과 문화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모로코는 1912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그로 인해 마라케시 역시 역사적 건축물 외에 프랑스가 건설한 근대적인 시가지와 건축물이 적지 않다.

모로코의 수도는 라바트지만 모로코 여행의 수도는 아마 마라케시가 아닐까 싶다. 많은 여행자들이 마라케시에서 모로코 여행을 시작하고 이곳을 거점 삼아 사하라 사막투어를 다녀오곤 한다. 반듯하게 정돈된 신시가지를 지나니 곧 천년의 세월이 서린 메디나(Medina) 성곽이 드러나고 끝없는 사람 물결 사이로 마차, 오토바이, 버스, 택시 등이 뒤엉킨 진짜 마라케시 메디나를 만났다. 모로코에서는 도시의 중심 지역 구 시가지를 '메디나'라 부른다. 과거 적군의 침입을 지연시키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미로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마라케시가 도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는 11세기 알무와히드 왕조부터이니 모로코에서는 페스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이다. 이 메디나도 그때부터 형성되었을 터이니 족히 천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셈이다. 메디나는 시가의 동쪽에 위치하고 주위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라케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건축이나 유물은 물론 서민의 주거지도 대부분 오랜 세월이 쌓인 메디나 안에 있다.

인구 93만 모로코 제4의 도시
사하라 투어·여행의 중심지
흙·건물 바깥벽 온통 붉은색
중세 건물 그대로 보존된 곳

천년 세월 서린 메디나 성곽
옛 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은
적군 침입 늦추는 미로 같아


clip20200828133650
clip20200828133559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향하는 메디나 골목의 광경들.

우리의 숙소도 저 속 어디쯤이었다. 메디나 안의 전통 숙소 '리아드'를 예약해두었던 것이다. 메디나에 가까워지자 내비게이션도 안내를 포기한다. 눈에 띄는 주차장에다 주차를 하고 전화를 하니 호텔 안내원이 마중을 나왔다. 안내원은 익숙하게 손수레에 짐을 싣고서 좁은 골목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우리는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메디나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미로였다. 집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골목은 두세 사람이 겨우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였고 그나마 곧은 곳 없이 제멋대로 돌고 꺾였다. 적의 침입을 지연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미로로 만들었다고 하니 작심하고 기억해두지 않으면 꼼짝없이 이곳에 갇히고 말 노릇이다. 모로코의 전통 가옥을 개조한 리아드 호텔은 화려한 타일이 덮인 중앙 거실을 가진 3층집이었다. 옥상에서는 제마 엘프나 광장이 가깝게 보이고 멀리 아틀라스 산맥도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왔다. 짐을 풀고 숙소 지도를 챙긴 후 다시 미로를 더듬어 제마 엘프나 광장으로 갔다.

메디나의 심장 '제마엘프나'
죄인 처형하고 목 내걸던 광장
지금은 인파와 행복으로 가득 


'사자(死者)의 광장'이란 뜻을 가진 이 광장은 과거 죄인을 처형하고 그들의 목을 걸어놓았던 곳이었다. 지금은 '메디나의 고동치는 심장' 또는 '행복의 광장'이라고 불린다. 별명답게 온갖 종류의 행복이 고동치는 듯하였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인파로 붐비는 이 광장에는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뱀이나 짐승을 부리는 사람, 줄타기를 하는 사람 등 온갖 재주꾼이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구경꾼들이 만든 작은 원과 원 사이에는 과일주스나 전통 음식과 과자, 기념품, 액세서리, 전통의상 젤라바나, 전통신발 바부시 등을 파는 난점이 빼곡하였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러고 보면 '고동치는 심장'이라는 별명이 썩 잘 어울린다. 이처럼 제마 엘프나 광장은 사람을 끌어 모으는 온갖 것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딱히 사람 구경을 온 것은 아니지만 저절로 사람구경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한 잔에 500원 하는 달콤한 오렌지 착즙 주스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우리를 구경했다. 그리고 서로 웃었다. 누군가 이곳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간 행위가 있으며 지구상 모든 상품이 판매되는 곳이라고 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야자수가 늘어선 마라케시의 신시가지가 '심심한 천국'이라면 이곳은 분명 '재미있는 지옥'이었다.

clip20200828134128
쿠투비아 모스크.

광장을 내려다보는 모스크의 뾰족한 첨탑 미나렛이 아니었다면 이 도시가 이슬람교의 중심지라는 사실도 잊어버릴 뻔 했다. 바로 마라케시의 랜드마크 쿠투비아 모스크였다. 야자수와 어우러진 모스크의 붉은 벽돌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정갈한 선을 만들어냈다. 광장이 마라케시의 고동치는 심장이라면, 쿠투비아 모스크는 마라케시의 얼굴이자 이정표이다. 77m 높이의 미나렛은 시내 어디서나 보이고 어느 곳으로 가든 이를 길잡이 삼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시가의 중심, 마라케시의 심장이다. 녹색 광장을 두른 5천400㎡ 넓이에 17개의 예배당이 있는 이 모스크는 2만5천명을 수용할 만큼 넓다. 1153년 술탄 압달 무멘과 그의 아들 아부 유세프에 의해 착공돼 1197년에 준공됐다.

광장을 빠져나와 메디나 성벽을 만났다. 마라케시 메디나의 성벽은 높이 5m, 너비 2m, 길이 12㎞에 이르고, 한때 200개나 되는 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 안에는 모로코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한 벤 유세프 신학교를 비롯해 12세기에 세워진 엘 만수르 모스크, 16세기 사드 왕가의 능묘와 엘 바디 궁전 등이 있으며 근대 모로코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바히아 궁전, 메나라 별궁 등도 있다.

이슬람교 중심지 상기시키는
랜드마크 '쿠투비아 모스크'
77m 미나렛은 도시의 길잡이

오아시스 같은 마조렐 정원
이브 생 로랑이 영감 얻던 곳
300여종의 식물들 어우러져
어느 각도서나 풍경화 같아


clip20200828134501
마조렐 정원의 이브 생 로랑의 추모 기둥. 기둥은 이브 생 로랑의 프랑스 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도 마라케시의 특별한 장소다. 이 정원은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가장 사랑했던 곳으로 그는 늘 이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이 정원은 1924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화가 자크 마조렐이 설계했다. 1947년에 대중에게 개방된 이후 마라케시 여행객의 필수 코스가 될 정도로 인기 높은 곳이다. 1980년 이후 이 정원은 이브 생 로랑과 그의 후원자이자 동성 연인으로 알려진 피에르 베르제의 소유가 되었다. 2008년 이브 생 로랑이 죽자 그의 유해도 이곳에 묻혔다.

제마 엘프나 광장에서 화려하게 장식된 꽃마차를 타고 마조렐 정원으로 갔다. 광장에서 멀어지면서 소음도 잦아들었다. 마라케시의 온갖 시끌벅적함으로부터 분리된 이곳은 혼잡한 도시 속의 고요한 오아시스 같았다. 정원 한쪽에 세워진 파란색 저택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박물관에는 베르베르 전통 물품, 이브 생 로랑의 개인 소장품, 마조렐 소유의 보석·도자기·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정원 안에는 거대한 야자나무 사이사이에 선인장과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각종 화초들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숲 사이로 난 산책로에는 노랑과 파랑의 도자기가 포인트 장식으로 놓여 있어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코발트블루를 칠한 모로코 양식의 건물과 분수, 수로와 연못 등을 배경으로 선인장, 야자수, 코코넛나무, 재스민 꽃나무 등 300여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어느 각도에서나 풍경화를 연출했다. 카메라 렌즈를 대는 곳마다 그림이었다. 정원의 나무나 꽃이야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곳의 벽과 화분, 그리고 특별한 색감의 코발트블루는 내 상상 너머의 것들이었고, 이것들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코발트블루는 '마조렐 블루(bleu Majorelle)'라는 이름까지 얻었다고 하니, 나만 특별하게 느끼는 건 아닌가 보다.

2020091101000000400038801

무질서하고 소란스럽고 복잡한 이 도시가 정겹고 생동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 비밀은 오랜 시간 속에 축적된 이 도시의 역사성과 포용성에 있을 것인데 붉은 흙벽돌과 푸른 야자수가 어우러진 도시의 색감도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은 마조렐 정원을 보고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크 마조렐을 이 도시에 주저앉힌 것도 이 도시의 생생한 색감과 생동적인 거리 생활이었단다. 이브 생 로랑 역시 "마라케시를 방문하기 전엔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이 도시는 나에게 색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이처럼 마라케시의 색은 나그네를 붙잡는 마법을 부린다.

대구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