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호의 치아 톡 투유] 슬기로운 치과의사 생활 속 인간미 가득한 에피소드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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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8   |  발행일 2020-09-18 제38면   |  수정 2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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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한 장면.
 최근 종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았다
 흥미진진하고 감동있는 스토리를 드라마로 엮어내는 극중 의사들이 치과의사인 내가 보기에도 멋져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과연 나의 치과생활엔 저런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이 없는것일까하고 고민해 보았는데 다음 두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에피소드 1.
 A씨를 처음안 것은 그분의 어머니때문이었다. 작은체구에 몸이 가벼운데다 성격도 엄청 급하신 어머니는 병원문을 들어서면 나부터 찾으셨다. 대기환자가 있건 내가 다른 환자를 보고있건 대뜸 틀니 때문에 잇몸 여기저기가 아프니 잠깐만 봐달라고 하셨다. 성에차지 않으시면 하루에 몇 번이건 오셔서 여기 조금만 손봐달라고 내손을 끌었다. 그러곤 뒤도 안돌아보시고 휘리릭 문을 열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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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연합치과 원장
어느날 각진 하관에 날카롭게 보이는 눈에 얼굴이 길며 체구가 바짝마른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A씨였다. 한참을 치료를 받던 그녀가 어떤 할머니에 대해 물어오셨다. 그러면서 그분이 자신의 어머니이며 의절하고 산다고 했다. 동글한 얼굴에 키가 작은 어머니와 전혀 닮지않은 외모였다. '의절'이라는 말에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당황해하던 나에게 나랑은 관계없는 분이니 잘 해드리라는 말을 덧붙여왔다.

  그러던 A씨가 잇몸이 안좋아 치료받으러 왔다. 잇몸건강은 전신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요즘 뭐 신경쓰시는 일이 있으신지 물었을 뿐인데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딸이 자살을 했다는 것과 그 딸과 자신이 어머니와 자신처럼 의절하고 지내왔다는 것을 얘기했다. 

  마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사산한 줄도 모르는 산모에게 그사실을 알리자 오열하는 것처럼 한참을 목놓아 우는 A씨를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았다. 때로는 무심코 던진 작은 소통의 말이 큰 울림을 울리는 법인가보다. 자신의 딸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해줘야할 어머니에께 조차 털어놓지못하는 A씨는 내가던진 '신경쓰시는 일'이란 한마디 공감의 말을 얼마나 기다렸길래 저럴까 싶어 웅성거리는 대기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다려주었다. 

◆에피소드 2
  아버지뻘 되는분과 우정을 느낄수도 있다.
 국장님은 작은 시골마을의 우체국장을 지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공보의시절 그 마을 유지였던 셈이다.

 당신께는 두주불사를 마다않는 술친구가 계셨는데 마을 농협조합장이셨던 조합장님이다 두분의 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던지 음주운전으로 차를 두 대나 폐차시킬정도였다. 물론 필자가 두분을 알게된 것은 보건지소에 치료를 하러오셔서 였고, 3년을 그 시골마을에서 근무한 내가 대구에 오픈을 하게 되면서 두분을 달리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대를 하고 병원을 오픈해야하는데 아버지께선 당신의 집을 저당잡히고 싶지 않으셨는지 담보대출을 부탁한 아들의 제안을 한번에 딱 끊어 거절하셨다. 퇴직금이라 딱 2백만원이 내게 있던 전부였다. 대출을 알아보러 마을 농협에 갔더니 2천만원까지 대출이 되지만 조합원 두사람의 연대보증이 필요했다. 난감해 하던 그때 두분이 선뜻 연대보증 서주겠다고, 개업잘해서 얼른 갚으라고 격려까지 해주셨다, 

 개업을 하고 대출금을 갚는 사이, 낮술을 거하게 하신 두분의 세 번째 차가 논바닥을 굴렀고 조합장님은 중태에빠져 엄청난 고비를 몇 번을 거쳐 겨우 살아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국장님은 목욕탕을 가서 쓰러지셨는데 어떤 치과의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셨는데 알고보니 필자의 절친선배였고, 심지어 심각한 심장질환으로 입원한 경대병원 흉부외과에서 목숨을 구해준건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였다. 

그 작은 시골마을 떠난지 30년. 그 두분은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고- 아마도 네 번째 차는 포기하신듯했다- 필자의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셨다.

 국장님이 살아있다면 올해 80세다. 평생을 피워온 담배가 당신을 거둬갔다. 얼마전 오신 조합장님이 외롭다고 했다. 국장님이 그립다며 꿀단지를 하나 주시고 가셨다.

박세호연합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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