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의 줌人] 소외이웃 무료진료 '진짜 의사'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 〈상〉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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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5   |  발행일 2020-09-25 제35면   |  수정 2020-09-25
"폐기물처리·병원청소 '그림자노동자' 그들도 코로나 시국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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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 처치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환한 얼굴로 연구실로 돌아오는 김동은 교수.
김동은(48)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의사와 교수로 살아가기도 벅찬데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으로 주말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쪽방사람들, 북한이탈주민 등 소외 이웃들을 만나 무료 진료를 한다. 김 교수는 최근 이 바쁜 와중에 코로나19사태때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와 바람을 담은 책을 냈다.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 기자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장마의 끝자락이었던 지난달 11일 오전 10시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 동산병원 2층 이비인후과 회의실에서 김동은 교수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15분쯤 늦게 도착한 그는 숨을 약간 몰아쉬며 "죄송합니다. 회의가 늦게 마쳐서…. 잠시만요." 그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5분여가 지났다. 한 손에 커피 두 잔이 담긴 캐리어를 들고 나타났다. 손수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가져 왔다. "드시면서 얘기하죠." 인간미 넘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음 따뜻한 그와 나눈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대구 첫 코로나 환자 발생에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
대구 '의료붕괴' 두려움 싹터

거창한 인도주의정신 아닌
의사라는 소명으로 최일선
일정 비는 날 격리병동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있지만
환자 돌보다 감염되는 것은
별로 공포스러운 일 아니다

정부의 투명·신속 정보공개
국민소통이 방역 대응 한몫
병상 확보 못한 대구시 '유감'

대구의료원만으로는 역부족
동산병원 병실제공 특별한 일
공공병원 확충 꼭 필요하다

의료진에 가려진 병원노동자
새벽부터 궂은 일로 땀 흘려
그들 덕에 의료진도 박수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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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동은 교수.
▶지난 2월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 이제는 종식까지는 아니지만 안정기에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가 대구에서 창궐할 때 선별진료소와 병원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셨다. 그때의 소회를 여쭤봤다.

"대구에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직후 저희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었다고 한 간호사가 알려줬다. 같은 날 대구지역 4개 대학병원의 응급실이 폐쇄됐다. 1월20일 우리나라에 첫 환자가 발생한 후 대구에는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스러웠지만 늘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1명, 10명, 23명, 50명, 70명, 148명 그리고 2월29일 741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모습을 보며 대구지역의 '의료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이미 확진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의료인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구실에서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 중 달서구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함께 자원 봉사할 선생님을 찾았는데 하루 만에 20여 명이 자원했다. 약 한 달간 달서구 선별진료소에서 문진을 하고 검체 채취를 했다. 대단한 인도주의적인 정신이나 거창한 봉사정신이 저를 감염병 최일선으로 달려가게 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시민이 불안에 떨고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바이러스 감염병을 공부한 의사가 아니면 누가 최일선에 설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의 소명 의식으로 힘든 시기 기쁘게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대구 동산병원 코로나19 격리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어서 운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루는 선별 진료를 마치고 직접 중구 대신동에 있는 대구동산병원에 가봤다. 격리 병동 안에서 60여 명이 넘는 코로나19 환자를 간호사 네 명이 방호복을 입고 고글까지 쓴 채 간호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장과 수간호사에게 말하고 수술과 외래가 없는 화요일,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격리 병동에서 간호사들을 도왔다. 배식하고 검체 채취를 하는 등 다양한 일을 도왔다. 격리 병동에서는 오래전 읽은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나오는 '오랑'이라는 도시에 갑자기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호복을 입고 고글을 쓰고 일하면 곧 땀이 비가 오듯 흐르고 호흡도 곤란했지만 별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에 걸린 환자들이었지만 평상시 병동에서 만나던 제 환자들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의료진만큼이나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한 채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들의 고통 역시 컸다. '섬망' 같은 증상을 보이는 고령의 환자들에게 자주 찾아가 멀리서 대화를 나누며 불안감을 덜어드리려 애썼다. 물론 중국의 안과 의사 리원량이 코로나19로 인한 폐렴을 세상에 알린 후 사망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의 두려움은 있었다. 그러나 환자를 돌보다 내가 감염되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았다. 다만 가족들이 저를 많이 걱정해서 마음에 아팠다. 최일선에 꼭 설 필요가 없었지만 만약 그랬었다면 마음이 훨씬 더 무거웠을 것 같다. 대구에 2차 대유행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또 방호복을 입을 것 같다. 지난 1차 대유행 때 많이 입어봤기에 이제는 더 빨리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웃음)

▶대구는 코로나19에 선방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방어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제가 우리나라의 방역을 평가할 정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조심스럽지만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 대응은 나름 잘했다고 평가한다. 메르스 때의 교훈을 살려 국민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 생각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발병 상황을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브리핑하면서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정부 시절에 발생한 메르스 사태 때는 의료인인 저도 환자가 어느 병원에서 발생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같은 분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아 사회적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등 국민들이 개인 방역에 잘 협조해준 점도 큰 역할을 했다. 중국으로부터 바이러스 정보를 받은 즉시 진단키트 생산을 신속하게 승인하고 대량으로 준비해 광범위한 검사가 가능했던 점도 성공적인 방역에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대구 시민들의 높은 시민 의식, 전국에서 달려와 준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대구의 의료진을 염려하고 응원해 준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료 대응에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메르스의 교훈을 살려 공공병상을 충분히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구의 국가 지정 음압병상도 10개에 불과했고, 역학 조사관은 단 한 명뿐이었다. 대구는 사실상 414병상 규모의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 하나로 코로나19에 맞섰지만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에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후 약 30일의 시간이 있었지만, 대구시는 병상 확보 계획조차 세워놓지 않았다. 2월 말부터 확진을 받고도 입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대구지역의 감염병 확산 초기인 3월 초, 약 2천300명의 확진 환자가 자가 대기해야 했고 초기 사망자 75명 중 23%가 입원을 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증상의 중증도에 따라 입원 등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진료 체계도 없어 경증 환자는 격리 병동에 입원하고 중증 환자는 자가 대기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공공병상의 확충과 진료 체계 구축은 서둘러야 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공공의료기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교수님의 생각은 공공의료를 지금보다 더 많이 확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공공병원은 평상시에는 시민들을 위한 적정 진료를 제공하고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필수 공익 의료 서비스를 하다가 감염병 확산 등 위기 시에는 신속하게 비상 의료체계로 재편되어 운영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병원은 병원 경영이나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즉각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민간병원은 어렵다. 대구동산병원이 병상을 제공한 것은 특수한 경우라 볼 수 있다. 감염병 환자를 많이 치료하면 할수록 손해가 더 커지는 상황에서 민간병원이 나서기 쉽지 않다.인구 243만명의 대구에는 공공병원이 사실상 대구의료원 하나뿐이다.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공공병원 병상 수는 약 1.3개에 불과해 독일(3.3개)과 일본(3.6개)보다 현저하게 적다. OECD 국가 평균 공공병상 비율이 70%를 넘는데 우리나라는 약 10.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역시 전체 병원의 5.7%에 그치는데 이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다. 대구지역의 공공병원병상은 통계상으로는 3천624병상으로 전체 병상의 9.9%를 차지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립대 병원인 경북대병원과 특수 법인 형태의 공공병원인 보훈병원, 산재병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대유행 때 확인했듯이 국립대 병원은 중증 환자 치료에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 제공은 쉽지 않았다. 특수 목적 병원 역시 일부 병상 제공에는 나섰지만, 대구의료원과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의료 취약계층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도 공공병원의 확충은 꼭 필요하다. 우리 사회 경제적 약자의 건강권 보장 또한 공공병원의 중요한 역할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지역의 공공병원이 하나밖에 없어 대구의료원을 주로 이용하던 취약계층의 불편이 컸다. 감염병 확산 시 더 큰 고통을 겪게 되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와 의료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대구지역에 공공병원의 확충이 꼭 필요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코로나19의 영웅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꼽는다. 교수님의 책을 보고 이들 이외에도 진짜 영웅이 또 있다는 걸 알았다. 교수님의 표현대로 그림자 노동을 하는 분들이다. 현장에서 그분들을 보고 느낀 점을 말씀해 달라.

"의사나 간호사들이 고생한다는 것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림자 노동'을 하는 많은 병원 노동자들의 수고는 의료진의 그늘에 가려져 있음을 격리병동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다. '여사님'이라 불리는 청소노동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나와서 의료진이 불편하지 않도록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땀을 흘렸다. 그분들의 휴게실에 우연히 들리게 됐는데 너무나 작은 방에 10여 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쉬고 계셔서 마음이 아팠다. 모두 적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외부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였지만 병원에서 하루에 한 개씩 지급하는 마스크에도 감사하다고 했다. 방호복을 입고 격리병동에 들어와 환자복과 이불 등 각종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자들도 감염의 우려 속에서 땀을 흘렸다. 병원 지하에 마련된 그들의 휴게실에 가보니 스티로폼 한 장만 바닥에 깔고 누워서 쉬고 계셨다. 넓은 휴게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던 제가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의사나 간호사를 '영웅'이라 불렀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 노동'으로 수고한 폐기물 처리 노동자, 청소 노동자, 전기실의 노동자, 방역업체 노동자가 있었기에 의료진이 박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의료진의 방호복 등 방역 장비 문제에는 큰 목소리를 내었으면서 그들의 허술한 방역 장비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못한 저 스스로 매우 부끄러웠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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