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미국·1940, 2018 재개봉)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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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8   |  발행일 2020-09-18 제39면   |  수정 2020-09-18
히치콕이란 전설이 시작된 영화

히치콕

히치콕의 영화들은 재미있다. 그리고 모던하다. 제작년도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번째 작품인 '레베카'는 낭만적인 사랑과 넘치는 스릴,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스토리로 시종 흥미진진하다. '서스펜스의 귀재'라는 히치콕의 색깔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뮤지컬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영국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이 원작인 '레베카'의 내용은 이렇다. 조안 폰테인이 연기하는 여주인공은 사별의 상처를 안고 있는 대부호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레베카는 죽은 전처의 이름이다. 대저택 곳곳에 남아있는 레베카의 흔적 탓에 괴로운 그녀. 죽은 레베카를 향한 하인들의 찬사와 매사에 죽은 사람과 비교 당하는 그녀는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관계도 균열이 생긴다. 레베카를 숭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은 사사건건 그녀를 괴롭힌다.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이야기 속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다.

흥미로운 건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둘러싸인 여주인공의 심리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제목인데,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 것이 상징적으로 보인다. 존재감 없는 가녀린 여인이 거대한 세상에 맞서 고난을 뚫고 마침내 사랑과 행복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청순가련한 모습으로 구원의 여인상 모습을 멋지게 연기한 조안 폰테인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잔인한 말이지만 히치콕은 촬영장 밖에서도 그녀에게 쌀쌀맞게 대하라고 스태프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의 주눅 든 연기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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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는 '이창'과 함께 히치콕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조안 폰테인, 그레이스 켈리 같은 아름다운 여배우를 볼 수 있고 사랑 이야기와 함께 여리지만 강인한 여주인공이 있어 그런 것 같다. 미 영화연구소에서 역대 영화 중 1위로 꼽은 '현기증'이나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인 '사이코' 등을 보면 천재성을 실감하며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특히 '사이코' 는 심리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며 그 편집 기교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특히 전설적인 샤워 신을 보라). 천재적인 솜씨의 그런 영화들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레베카'처럼 낭만과 품격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니 영화는 그야말로 취향대로인 셈이다.

다큐멘터리인 '히치콕과 트뤼포'를 보면 마틴 스콜세지를 비롯한 명감독들이 얼마나 그에게 매료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할리우드보다 프랑스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프랑수아 트뤼포를 비롯한 프랑스 감독 및 평론가들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그들의 열렬한 찬사로 인해 현재까지 전설적인 존재로 남았다.

아직 보지 못한 히치콕의 작품들이 많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기기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던 천재 감독의 유산들을 하나하나 순례해보라. 히치콕의 영화들을 찾아보는 건 '코로나 블루'를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올 10월에는 새로운 '레베카'가 제작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고전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몹시 궁금하다. 전설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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