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돌 땐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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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5 13:22  |  수정 2020-09-15 13:30  |  발행일 2020-09-16 제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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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록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하와일록
하회일록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전국적으로 역별이 돌아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발견돼 이목을 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 일기자료 중 역병이 유행한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를 공개했다.

15일 국학진흥원에 따르면 경북 예천에 살고 있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면서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에게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뒤에 작성한 일기에는 "증손자가 홍역에 걸려 아파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또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 역시 '계암일록(1609년 5월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했는데, 5월1일 일기에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라는 내용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했으며,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일록(1851년 3월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현종실록(1668년)'에도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홍역과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당시에는 홍역과 천연두가 크게 유행했던 탓에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주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집안에 상(喪)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우환이 닥쳤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역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는 무엇보다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사람 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는 조선 시대 홍역과 천연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하루속히 되찾기 위해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과감하게 추석 차례를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재윤기자 ssanae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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