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 박진관
  • |
  • 입력 2020-09-22   |  발행일 2020-09-22 제26면   |  수정 2020-09-22
아내 없이 삼남매를 키워낸
아버지의 두려움은 컸을 것
그러나 사랑으로 희석시켜
국민 사랑하고 책임진다는
위정자의 말이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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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군 군월드 대표

예로부터 위정자라 함은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받음과 아울러 '아우르지 못한 군주는 한낱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함의를 품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위정자의 위선에 스러져간 서민들의 애환을 목도하고 48권에 이르는 목민심서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품격과 신뢰를 지킬 방법을 기술했다. 위정자로서 후회하고 미안해하는 '염치'였을까. '고난의 시험'을 딛고 '인정(認定)'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익숙한 안위'를 펼쳐낸 '아버지의 마음' 아니었을까.

얼마 전 맞은 아버지의 1주기는 당신의 소탈한 생전 성정에 따라 작은 추념의 자리로 갈음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삼남매에게 아버지는 늘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삼남매는 어머니를 잃었지만, 당신은 아내를 잃은 애수와 함께 삼남매만의 위정자가 돼야 하는 책임마저 켜켜이 얻었음에도 말이다.

아버지가 미안하셨던 건 아버지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기에 아내의 부재 속, 삼남매의 안위를 일궈야 하는 수두룩한 시험기간의 연속이었을 터다. 그래서 아버지는 두려웠다. 하지만 삼남매에 대한 사랑이 짙어질수록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은 옅어졌을 게다.

사면초가에 내몰아 당신의 몸을 옥죄어 온 고난의 순간에도 선택은 늘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 가늠할 수 없던 당신의 심연을 두려움 없이 삼남매에게 투영했고, 결국 아버지는 좌고우면 않고 우리를 사랑했다. 아버지의 미안함도, 후회도, 두려움도, 그것을 모두 인정한 아버지의 사랑이었기에, 그것은 정답이었다. 우리는 사실 아버지의 이 사랑이 지겹고 초라했다. 하지만 지겨움과 초라함의 이면엔 익숙함과 편안함이란 것, 억겁의 시간이 생성해준 익숙한 내 사람들과 편안한 내 것만이 우리를 진심으로 보듬어 낼 수 있음을, 그렇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아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이 아쉬운 진리를 이제야 깨달음에 오늘도 비통하다.

대통령도 대통령이 처음이고, 장관도 장관이 처음일 것이다. 대통령도 처음이고 장관도 처음이다 보니 국무위원은 몰랐을 것이다. 국회의원 역시 70년간 적재돼온 관성에 물든 채 몰랐을 것이고, 공기업 또한 몇 차례의 정권을 거치며 고착화된 타성으로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당장은 지겹고 초라하게 느껴질 것이고, 불세출의 자리에 오른 지금에 이르러 고난과 시련을 몸소 체험하기가 두려울 것이다. 미안하지만, 후회하지만, 인정하지만 입 밖에 꺼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미안함도 후회도 두려움도 인정치 않으면 정답은 모호해진다. 정답이 모호하면 선택은 미몽을 헤맨다. 켜켜이 얻은 책임을 도외로 하지 않고 눈앞의 불편한 시험을 '그 국민'을 사랑하는 것으로 책임질 수 있다면 두려움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인정하기 두렵지만 미안하고 후회하기에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지겠습니다." 이 한마디에 지겹고 초라한 국민들은 이 정권과 가진 찰나의 순간, 순간을 편하고 익숙한 그날로 그리워하지 않을까.

후회를 한다는 건 인간만이 지닌 고유 성정이다. 후회를 진정 후회답게 해보라. 그렇다면 국민들로부터 조금 더 후한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택하라. 미련은 접어두고.

이동군 군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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