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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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3   |  발행일 2020-09-23 제12면   |  수정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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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희망지원금을 받았다. 긴급 재난지원금,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 긴급 생계비지원금이란 말보다는 편안하게 들린다. 희망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선택적으로 주는 것과 모든 대구시민에게 주는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로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들에게 주는 지원금이란 의미는 같은데 이름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주변에서 개명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름이 예쁘지 않아서, 주변의 놀림감이 된다거나 이름으로 인해 삶이 평탄치 못하다는 등 이유도 다양하다. 한 친구는 이혼하면서 개명했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살아보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 지인은 아들 이름이 유명인의 이름과 같았는데 그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자 개명했다고 한다.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들이 모인 정당도 심심찮게 이름을 바꾸는 것 같다.

'후자(後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두 번씩 개명했다. 지난 시대 어른들이 흔히 그랬듯이 그도 딸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동생을 보라'는 부모님의 염원 때문에 얻게 된 이름이다. 그녀는 자기를 소개할 때마다 곤혹스러웠단다. 자매가 몇이냐, 남동생이 태어났느냐며 장난삼아 물어본단다. 결국 그녀는 개명했다. 작명가가 지어준 예쁜 이름으로 신분증도 바꾸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밥을 사며 많이 불러 달라고 신고식도 했다.

친구들은 바뀐 이름을 불러주었지만 정작 자기는 1년이 지나도록 남의 이름 같았단다. 생각 끝에 다시 개명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릴 때 집에서 부르던 '영숙'이라는 아명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는 지금 수년째 영숙이로 잘살고 있다.

필자는 개명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다. 결코 이름이 자랑스럽다거나 예뻐서는 아니다. 그러나 싫다거나 불만스럽지는 않다. 부모님 나름대로 염원과 기대가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50여 년 이름을 불러 준 분들께 혼란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유명사이건 보통명사이건 이름은 사회적 약속이다. 비록 유명인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만나고 헤어진 사람이 얼마며 지금도 계속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얼마이겠는가. 부르기 쉽고, 듣기에 좋고, 의미까지 괜찮다면 좋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을 갖고 싶지는 않다. 마치 몸에 생긴 흉터가 시간이 지나면서 친숙해진 것처럼.

이름이 바뀐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더더욱 이름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거나 잘못된 삶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이름에 담긴 염원대로 노력하며 살다 보면 멋진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훌륭한 삶을 살다간 위인의 이름은 훌륭한 이름으로 기억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잘살았다고 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의 이름으로 남고 싶다.

얼마 전 이름을 바꾼 '국민의힘'도 당명처럼 정말 국민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정당이 되어 주길 바란다.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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