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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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4   |  발행일 2020-09-24 제27면   |  수정 2020-09-24

1976년 중3 때 급우로부터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책을 선물로 받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구구절절 어찌 그리 가슴에 와 닿았던지.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오뉴월의 장례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바이올린 G현.’ 1946년 발간된 산문 수필로, 작가는 1892년에 태어나 기자로 근무했고, 1·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 시대의 슬픔을 그려냈다. 이 책의 영향 때문인지 작가와 비슷한 인생 길을 걷고 있으니 개인적으론 아이러니다.

‘우리를…’ 책이 세상에 나온 지 74년이 됐다. 그러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시대만 다를 뿐 양태는 비슷하다. ‘코로나19블루, 한 장관의 표독스러움, 법꾸라지들의 얄미움, 정치인들의 거만함, 벤츠 음주운전자가 중상 입은 피해자 구호는커녕 변호사에게 전화’. 슬픔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행태가 부지기수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분노의 감정은 인간이 피해야 할 가장 나쁜 심리상태라고 지적한다.

법정스님은 "진정한 인연이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고 했다. 인연은 받아들이되 집착은 놓으라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른 바 없이 해야 한다. 인연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미련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놔야만 분노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를 옭아매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이 올 때를 대비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거나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분노만은 꼭 다스려야 한다.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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