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방콕 시민, 다시 사남루앙으로

  • 박진관
  • |
  • 입력 2020-09-25   |  발행일 2020-09-25 제18면   |  수정 2020-09-25
사남루앙에 모여든 시위대
겉으론 정부 퇴진 외치지만
친탁신·친왕정 지친 국민에
'새민중당' 창당 의지 밝혀
새 대안세력 정착할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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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 전문기자

오랜만에 방콕 이야기를 꺼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한동안 잠잠했던 방콕이 요즘 외신판을 제법 뜨겁게 달구는 까닭이다. 지난 주말 탐마삿대학 학생과 시민이 방콕 민주화운동 성지인 사남루앙으로 몰려들고부터다. 방콕 한복판에 자리한 이 12만㎡ 광장은 본디 퉁프라멘이라 부른 왕실 화장터인데. 1855년부터 통사남루앙으로 이름을 바꿨다. 탐마삿대학과 마주 보는 이 사남루앙은 학살진압으로 얼룩진 1973년 헤에까안십시뚤라(10월14일 사건)와 1976년 헤에까안혹뚤라(10월6일 사건)라는 두 차례 탐마삿대학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고, 프사파타민(검은 5월)이라 일컫는 1992년 방콕 민주항쟁의 심장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이 광장을 메워왔다.

이번 시위대가 사남루앙을 뒤덮은 지난 19일은 꼭 14년 전인 2006년 손티 분야랏깔린 전 육군총장이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낸 날이기도 했다. 이날 참여자 수를 놓고 시위 지도부는 5만명으로, 경찰은 1만명으로 밝혀 큰 차이를 보인 가운데 외신은 3만명으로 어림쳤다. 이른바 '사남루앙 정족수 10만명'에는 못 미친 셈이다. 이건 사남루앙 10만 시위대가 의회 권력과 맞먹는다는 뜻이고, 그 힘으로 정부를 무릎 꿇게 할 수 있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학생과 시민 연대를 외치며 '탐마삿시위연합전선'이란 이름을 내건 시위대가 다가오는 헤에까안십시뚤라 47주년인 10월14일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터에 서서히 덩치를 키워온 걸 보면 머잖아 사남루앙 정족수를 채우지 않을까 싶다.

이번 사남루앙 시위대는 2014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쥔 쁘라윳 짠오차 총리 정부 퇴진과 헌법 개정을 앞세웠지만, 사실은 그보다 눈여겨볼 대목이 둘 있다. 하나는 왕실 개혁을 외친 용기다. 지난 20일 사남루앙에서 하룻밤을 지샌 시위대는 비록 경찰에 막혔지만 추밀원으로 행진했고, 왕실 터인 사남루앙에 '사남랏사돈'(민중의 광장)이란 명판을 심었다. 태국 사회에서 여태 어떤 시위대도 공개적으로 왕실 개혁을 외치며 왕실 상징에 손댄 경우는 없었다. 다음날 곧장 반응이 왔다. 경찰은 최대 15년 형을 매긴 헌법 제112조 불경죄(왕실 모독죄)와 집시법으로, 방콕시와 문화재국은 사남루앙 문화재 훼손으로 시위 지도부를 각각 고발했다.

다른 하나는 시위대가 밝힌 새민중당(NPP) 창당이다. 이건 현실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친탁신 레드셔츠와 친왕정 옐로셔츠의 다툼으로 지친 시민사회에 새로운 대안정치 세력의 등장을 예고한 셈이다. 다만, 기성 정치판과 군부의 욕망 사이에서 아직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오롯이 드러내지 않은 새민중당의 앞날을 지레채긴 너무 이르다. 벌써 몇몇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2014년 쿠데타 뒤 찍소리도 없이 사라졌던 레드셔츠 지도부와 탁신까지 끼어들 낌새를 보이는 가운데, 새민중당이 구닥다리 정치판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탓이다. 게다가 "혼란이 일면 군이 나설 수밖에 없다"며 군부가 일찌감치 으름장을 놓아온 터라 쿠데타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태국은 1932년 유럽 유학파 관료와 군인들이 무혈 쿠데타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제로 바꾼 뒤, 88년 동안 성공한 쿠데타만 19번이었고 군인이 정치를 말아먹은 기간만도 59년이었다. 그사이 스쳐 간 총리 29명 가운데 군인이 16명이었다. 이제 사남루앙 시위를 바라보는 시민의 선택이 남았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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