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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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8   |  발행일 2020-09-28 제27면   |  수정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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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논설위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는 1940년대 발표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이다. 작가가 1936~39년 벌어진 스페인 내전을 겪은 뒤 이를 소재로 쓴 작품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허무함을 메시지로 전하면서 스토리는 주인공 남녀의 애정 행각으로 풀어나갔다. 그래야 읽히니까. 이 소설을 토대로 동명의 영화·드라마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당대 정상급 배우였던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 더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알다시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종은 수업의 시작·끝을 알리는 학교 종이 아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교회의 조종(弔鍾)이다. 그래서 책 제목의 정확한 번역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다. 여러 견해 중 대략 '저 종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가'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제시돼 있다. 소설에 나오는 시인 존 던의 기도문 '나 자신이 인류의 한 부분이니, 친구의 죽음은 곧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하지 말라. 그것은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라는 문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헤밍웨이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존 던(1572~1631)의 이 기도문에 영감을 얻어 시구인 'For Whom the Bell tolls'를 소설 제목으로 선택했다. 발표된 지 80년 가까이 된 이 소설 제목이 요즘 갑자기 맴도는 이유는 현 난세가 돌아가는 모양새와 무관치 않다. 이 '어지러운 세상은 과연 누구를 위해 돌아가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요즘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장기화하면서 인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런데 돌아가는 세상사가 온통 우울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 우울병이 번지는 이유다. 국민의 아픔을 돌봐야 할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에 매몰돼 국민 고통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국가·방역당국·지자체의 당면과제는 9개월째 오로지 '코로나 확산 방지'다. 비대면, 거리두기 강화로 기업·소상공인들은 매출부진에 빠져있고, 음식점 등 자영업체들은 폐업했거나 문 닫기 일보 직전이다. 2년 전 타계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예견한 대로 지구 멸망의 시기가 가까워 온 것은 아닐까? 그는 변종바이러스와 함께 기후변화·인공지능·소행성 충돌·핵전쟁이 지구종말을 야기할 위험요소라고 예측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바이러스에 당하고 있다. 인류에 조종을 울리는 시기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정의마저 사그라지는 이런 절체절명의 시기,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사명은 무엇인가. 난세 극복을 위해서는 각자 창조적 파괴를 통해 신무기를 장착한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진단이 유효해 보인다. 혹자는 언론인들의 경우 면도 칼날보다 더 예리한 분석력으로 시대를 해부하고,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는 기회다. 과감한 변신으로 시대변화상에 걸맞은 뉴 노멀을 만들어야 한다'는 판에 박힌 말은 이제 지겹다. 이 대목에서 '종(鍾)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구절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답이 없어 보인다. 부정적인 생각의 반추(反芻)를 끊고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 자기가 잘하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게 중요함을 깨닫는 요즘이다. 난세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구는 여전히 태양계를 돌고 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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