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반재의 종림스님…웃음이 나의 설법이고 법문…말이란 것은 마음을 제대로 못 전하더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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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5   |  발행일 2020-09-25 제34면   |  수정 2020-09-25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고반재의 종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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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의 한국전통문화의 정수랄 수 있는 불경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고반재 버전의 장경전각이랄 수 있는 천년지장을 만들었다. 그는 한가로운 시간이면 그 뜰 앞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다 보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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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불경, 목판본, 불교 관련 골동품, 정신문화 관련 인문학 도서가 빼곡한 고반재 1·2층 내부 전경.

고반재에는 평생 나와 동고동락한 동서양 경전류, 경판류, 골동품류, 그리고 구조주의 등 동서양 철학서 등 온갖 인문학 도서가 서가에 빼곡하게 꽂혀 있다. 1층 책 박물관, 2층의 숙소를 겸한 대중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박물관에는 스님이 대장경 전산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모은 대장경 등의 불교 경전과 철학 서적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책장 사이에는 중국·동남아 등에서 수집한 불상, 비석 탁본과 같은 불교미술품이 놓인다. 책을 좋아하는 스님의 개인 박물관이면서 대장경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불교 책 박물관이 될 것이다. 고반재 옆에 전통스타일의 전각이 있다. '천년지장(千年之藏)'. '천년의 보물을 수장한 건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엔 1천년 전 간행된 고려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이 봉안된다. 봉안될 초조대장경은 국내 박물관·미술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 반출된 초조대장경의 인본을 복원한 2천40권이다. 모두 닥나무 종이에 전통 인출방식으로 찍어내 향후 1천년은 지속될 것이다. 여기는 재조(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경판고와 함께 대장경의 성소로 진화할 것이다.

1993년 팔만대장경 전산화작업 시작
한자 입력 가능한 코드 없어서 난관
2만여명이 35억원 후원금 모은 덕에
목판본서의 가치서 정보가치로 부활
검색할 수 있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

불교서의 '마음'은 찾는 대상 아니다
진영의 세상됐다…그 논리는 '극단'
이 빠지고 체중 줄어도 그저 빙그레
목숨의 소유권 없으니 오히려 편해
소유권자가 내놓으라면 내놓아야지

◆팔만대장경 전산화 작업

내가 중질하면서 뭔가 하나 정도는 확실한 일을 하고 싶었어. 이 나라의 불교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조그마한 일 하나 정도 말이지. 그래서 팔을 걷어붙이고 시작한 게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이야. 1993년쯤 됐을 거야. 합천 해인사 우화당 한쪽 방에서 큰 발심을 한 거지. '고려대장경연구소'라는 현판도 걸고 말이야. 고려대장경이 완각되고(고종 38, 1251년) 750년 만에 8만1천258매의 대장경판이 지름 10㎝ CD롬 15장으로 환생하게 됐어. 7년 세월을 바늘끝처럼 살았지. 글자수는 5천280만1천771자. 대한민국 국민 수와 엇비슷했어.

검색기능이 참 편리해. 하나의 한자로 대장경 원문을 찾아가는 일자검색과 색인표준을 통한 색인검색, 불교용어검색, 경전명으로 경판을 찾는 경전목록검색 기능 등이 달려 있어. 흥미로운 사실은 고려대장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글자가 불(不)자인데 무려 63만여 곳이야. 홈페이지는 'www.sutra.re.kr'.

대장경 전산화 과정에 숱한 난제가 있었지. 대장경에 나와 있는 한자를 입력할 수 있는 코드체계가 없었어. 고려대장경을 전산표현하자면 이체자를 포함하여 6만1천352자의 한자가 필요해. 그런데 현재까지 한국, 중국, 일본 및 유니코드 등 국내외에서 표준화되어 있는 코드체계에서는 대체로 1만5천자의 한자 표현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지.

◆2만여명 후원자 있었기에

2만여명의 후원자가 성공의 밑거름이었지.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보내온 매달 5천원의 후원금,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금한 7만6천500원을 부모님과 함께 후원한 6세 어린 친구, 회갑잔치에서 모인 축의금을 선뜻 내주신 보살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아르바이트비를 낸 후원자 등 그런 감동스러운 돈이 얼추 35억원이나 됐지. 외국 사람들은 '이게 바로 한국불교며, 한국불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대단해들 했지.

누가 묻더라고. 왜 그렇게 어려운 작업을 했느냐고. 전산화되었다 함은 일차적으로 고려대장경이 목판본으로서의 가치에서 정보로서의 가치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지.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대장경을 책상 한편에 두고 언제라도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지. 불교학은 지금까지 일본의 신수대장경과 대만의 불광대장경을 바탕으로 연구돼왔으나 이제 고려대장경이 중요한 학문자료가 될 거야.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세계 최고의 경전체계인 고려대장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교학의 학문적 바탕은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의 불교학 자료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온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지.

◆공(空)과 마음에 대한 대탐사

그 일이 얼추 끝나자마자 아날로그 세상이 디지털 세상으로 뒤집어지기 시작했어. 다행히 내 할 일을 다했다 싶었고, 그래서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비슷한 결행이 필요하다 싶어 인연들을 뒤로하고 그냥 훌쩍 함양으로 내려왔어. 한때 대찰인 전남 해남 대흥사 선원장 등도 지냈는데 다 인연은 아니었지.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니야. 자연을 갖고 헝크러진 맘자리를 다림질한다고나 할까? 내 생의 최대 화두는 공(空)이야. 그와 관련 수년 전 한 권의 철학에세이집을 냈고 조만간 대구 만인사를 통해 '공에 대한 단상들'이란 책으로 나올 건데 두 명의 도반이 합세했어. 서예가 일사 석용진, 그리고 박진형 시인이 공에 대한 그림과 시를 동참시켰어.

지금 불교에서 마음 마음 그러는데, 나는 그런 식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 없으니까 없지, 왜는. 나는 오히려 갈등의 뿌리를 찾아다녔지. 괴롭잖아 뭔가 얽혀서…. 그걸 해소하기를 원한 거지.

마음은 찾아지는 대상이 아니야. 12연기라는 걸 부처가 설파했는데 본체는 찾아도 없는데 그건 모든 삼라만상이 인연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지. 하나가 모든 것이고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 그리고 있는 것(有)과 없는 것(無)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상생한다는 것. 이게 불교 가르침의 요체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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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반재 옆 천년지장 전각 안에서 풍전등화의 위난 속에서도 호국의 일념으로 고려대장경을 만들었던 지난 시절 승가와 민초들의 애국심의 가치에 대해 설파를 하고 있는 종림 스님.

◆종림이 보는 세상

불법은 그렇다 치고 그럼 세상은 어떻게 봐야 되는 거지? 많은 이들은 평등을 운운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인간사는 불평등한 거야. 다만 기회균등차원에서 교육은 똑같은 선에서 출발하도록 해야겠지. 그다음에는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 돼. 그러면 다들 검·판사나 의사 되겠다고 아등바등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유산의 절반 이상은 내놔야 해. 살아서나 죽어서나 재산은 아무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지키려고 애를 쓰는지….

어느 날부터 진영의 세상이 됐어. 진영논리는 하나의 '극단'이지. 제대로 사는 사람은 절대 장담하지 않지. 삶을 극단으로 몬다는 건 결국 자신의 자아를 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 한없이 불리하게 발효시키는 과정이야. 유명하다는 건 무명스러운 것들한테 진 엄청난 빚이라 봐야지.

내가 절집에 들어오기 전 사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본 책이 있어. 바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였어.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신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유의 영역이고. 사물은 변화해도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거야? 그게 '불성'일까? 그래서 변하지 않는 법을 추구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사는데 계속 문제가 발생하는 거야. 그래서 있는 것보다는 없음, 즉 무(無)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나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고 봐.

무에서 시작된 나의 사상적 여정은 결국 공으로 귀결됐어.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어. 공이란 구성주의가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초월주의는 하늘의 신이 지상에 강림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 있는 것을 아무리 잘 구성해도 빈구석이 있고 초월의 세계에 구원을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지. 이 두 잣대를 들이밀면 지상의 그 어떤 이념과 신념, 믿음도 자유로울 순 없지. 구성주의도 아니고 초월주의도 아닌, 무로 넘어가지도 않고 유에 편입되지도 않고 0과 1의 사이에 선을 그을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공이야. 그건 삶을 전제로 죽음을 보는 것보다 죽음을 전제로 삶을 보면, 그 삶이 훨씬 더 정확하게 보일 수 있다는 논리로도 작동될 수 있고.

불교는 무신론적인 입장이지만 신적인 요소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 그리고 유심론적인 입장이지만 유물론에도 등을 대고 있어. 난 무신론적인 입장이야.

갈수록 예전 몸 같지 않아. 체중도 줄고, 이빨도 빠지고, 암세포도 늘어나고, 하지만 난 오히려 줄담배 즐기며 종일 빙그레 웃기만 해. 목숨의 소유권이 나한테 없으니 일찍 죽고 늦게 죽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소유권자가 '내 목숨 내놔라' 하면 즉각 내놓아야지. 그래서 편해. 웃음이 나만의 설법이고 법문이겠지. 말이란 것, 그것으론 맘을 제대로 못 전해. 핏대 세우며 주장하고 지식자랑해도 난 개입하지 않아. 개입은 무의미해. 그냥, '그려그려…' 하는 정도의 추임새만 넣지. 모두 옳으면서도 모두 틀릴 수 있으니….

코로나 정국 탓인지 고반재 상공의 하늘이 너무나 투명하고 맑아. 그 야심히고 소슬한 빛줄기 아래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까타리의 '천개의 고원', 그리고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이나 마저 읽어야겠어. 이 가을 녘, 멀어지는 사람을 등진 채 구조주의 철학 여정에서 봉착한 '상징과 존재의 상관관계'나 더 만지작거려봐야겠지.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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