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은행나무' 전설 깃든 천년을 살아 낸 칠곡 보호수

  • 김호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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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7   |  발행일 2020-10-07 제12면   |  수정 2020-10-07
3년간 아이 못 가진 새색시가
나무에 속상한 마음 풀어놓자
꿈에서 떨어지는 은행잎 잡고
열달 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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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은행나무.

"말하는 은행나무처럼."

지난달 경북 성주군 출장길에 찾은 어느 마을 어귀에 내걸린 '말하는 은행나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말하는 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내비게이션은 경북 칠곡군 기산면 지산로 417로 안내했고, 거기서 은행나무와 마주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칠곡'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1018년(현종 9)에 심어졌다고 했다.

거뜬히 천년을 살아낸 칠곡군의 군목이자 보호수로, 마을 계곡을 따라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꿋꿋하고 위풍당당한 기품있는 모양새가 경외감을 자아냈다. 보호수 안내문에는 '수령 950년, 수고 30m, 나무둘레 7m로 나뭇잎이 피는 횟수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든다는 유래가 있고, 가을에 단풍이 들면 노란 은행잎이 화려한 장관을 연출한다'고 적혀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은행나무를 둘러보던 터에 만난 어르신 한 분이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 옛적 성주에서 칠곡 퉁지미 마을(현재 각산)로 시집온 새색시가 3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없었다 아이가. 시어마시 눈치도 보이고 속이 답답해가 뒷산 어귀에 은행나무를 찾아갔는기라. 나무를 붙들고 속상하고 슬픈 맘을 거다가 풀었다 카더라. 한날 색시가 꿈을 꾸이께, 은행나무가 나타나가 방가봤는데 갑자기 친정어매로 바뀌어서 깜짝 놀랬다네. 친정어매가 딸내미한테 갈라지지 않은 은행이파리 한 개, 갈라진 이파리 한 개를 손에 쥐 주민서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로 가가 떨어지는 이파리를 꼭 잡아래이' 하더라네. 그카고 친정어매는 다시 은행나무로 바뀌었네. 색시는 어매가 시키는 대로 은행잎을 잡았는데 이파리가 갈라져 있었대여. 색시는 곧 태기가 있어가 열 달 뒤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그 후로 아기를 낳지 못한 며느리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갈라진 잎을 잡은 며느리들은 아들을, 갈라지지 않은 잎을 잡은 며느리들은 모두 딸을 낳았다고 한다. 게다가 남모를 고민을 은행나무에 털어놓은 사람들은 꿈속에서 은행나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으로 나타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조언을 해 주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한다. 차츰 이 은행나무는 말하는 이들의 고민을 알아봐 주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답을 말해준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면서 '말하는 은행나무'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태풍 '마이삭'이 몰아쳤을 때 오토바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할아버지를 보내야만 했던 손자의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해외 출장길에 강도를 만나 여권 가방을 통째 뺏긴 충격으로 첫아기를 잃어버린 새색시의 깊은 슬픔도, 코로나19로 집에 자주 못 오는 요양보호사 엄마를 둔 어린 아들의 말 못 할 그리움도 '말하는 은행나무'는 잘 전해 들었을 것이다.

필자도 경건하게 "코로나19로 추석 명절의 만남과 해후를 금지당한 가족들이 '말하는 은행나무'처럼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주기를 비나이다"라고 두 손 모아 말했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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