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항 강사리 다무포...반달모양의 바다, 동해 포경선이 고래 부려놓고 가던 곳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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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9   |  발행일 2020-10-09 제36면   |  수정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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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다무포 북쪽 곶의 벼랑에는 강금마을과 연결되는 데크 산책로가 놓였다.

높고 파랗던 하늘은 포항에 들어서면서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렵하게 뻗어나가는 영일만대로가 구룡포항에 닿을 때까지 빗방울은 꽤나 호기롭게 길을 내어주다가도 금세 막아서버리는 변덕을 보여주었다. 구룡포를 지나 북향하며 만난 지 오래된 옛 친구와 같은 삼정, 석병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고 곧 강사리 다무포다. 13년 만인가. 마을 입구의 작은 밭에는 열 지어 무성히 자란 옥수수들이 이국의 기예꾼처럼 45도로 기울어진 채 꼼짝 않았고 그 주변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기하학적인 집이 생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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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무포 해변의 붉은 배. 옛 영화를 이야기하듯 색색의 고래들을 꿰차고 있다.

◆다무포

해변으로 나아간다. 바다는 반달모양이다. 남쪽으로 굽이지는 긴 곶에는 솔숲이 무성하고 북쪽으로 굽이지는 긴 곶에는 벼랑 위에서 자라난 소나무들 사이로 펜션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대문들 어디에서도 온 마을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작은 마을. 해안선을 따라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0여분이면 충분한 다무포(多無浦)다. 원래 이름은 다목포(多木浦) 혹은 다목계(多木溪)라 한다. 송림이 우거진 계곡 어귀에 형성된 마을이라 그리 불렸다. 그러다 조선 말엽 감(甘)씨가 정착하면서 외진 곳에 숲만 무성할 뿐 없는 것이 많다하여 다무포가 되었다.


없는 것 많다하여 '다무포'
옛날엔 배 들어오길 기다리다
고래 꿰차고 온 배 보며 흐뭇
2006년 4~5월 2300마리 목격
2008년 고래생태마을로 지정



없는 것이 많은 다무포. 강사1리의 자연부락이다. 옛날 동해에 고래잡이가 성했을 때, 잡은 고래가 무거워 더 이상 잡을 수 없게 되면 배는 가까운 포구에 고래를 부려놓고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고래를 부려놓는 포구. 다무포가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선주는 바다가 환한 창가에 앉아 하늘을 봤다가 바다를 봤다가 작은 바람에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제나 저제나 배 들어오는 소리에 귀를 세웠다. 그러다 뚜-우 하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뛰어나가 고래를 꿰차고 들어오는 배를 싱글벙글 맞이했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쯤 풀쩍풀쩍 떼 지어 왔던 고래들, 그 집채만 한 고래들이 풀쩍거리던 다무포 앞 바다였다. 2006년 4월과 5월에는 2천300마리 정도의 고래가 목격되기도 했었다. 다무포는 2008년에 '고래생태마을'로 지정되었다. 많이 변하겠구나, 그리 생각했더랬다.

뭍과 모래사장 사이에 색색의 고래들을 주렁주렁 단 붉은 배 한 척이 떠올라 있다. 그 앞을 자그마한 강아지가 짧은 지그재그로 달리고 그 모습을 한 할머니가 지켜보고 계신다. 돌 많은 해변에는 한 여인이 해초를 채집하고 있다. 마을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분홍빛의 화장실이 생겼고, 집들의 담벼락이 파스텔톤으로 환해졌다. 전봇대에는 고래가 하늘을 난다. 마을 앞길에서 쉽게 해변으로 내려설 수 있는 탄탄한 돌계단이 생겼고 북쪽 곶의 벼랑에는 윗마을과 연결되는 데크 산책로가 놓였다. 바다 위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고 빗방울이 여전히 차창을 두드리고 있지만 그녀들을 보며 차 문을 연다. 파도소리 드세고 바람이 차다. 그녀들은 역시 바닷가의 여인들이다. 높은 파도가 고래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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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강사리 고인돌.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90톤이 넘는다고 한다.

◆강사리

바다를 뒤로하고 도로에 오르자 언덕진 자리에 우뚝 선 커다란 바윗돌이 보인다. '강사리 고인돌'이다.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90t이 넘는다고 한다. 현재 영일만 남쪽 고인돌 중에서 가장 크다. 이 고인돌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하늘의 신들이 금강산을 꾸미기 위해 전국의 바윗돌을 나르게 되었다. 한 여신이 이 커다란 바위를 하나는 머리에 이고 또 하나는 치마에 싸서 금강산으로 운반하던 중 바위가 필요 없다는 전갈을 받게 된다. 그녀가 버린 바위가 바로 이 고인돌이란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신령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비를 멈춰 주세요, 고인돌님. 바위를 지키듯 선 나무가 살랑 흔들린다.


전설과 신령이 깃든 고인돌
청동기시대의 강사리 고인돌
신들 금강산에 바위 옮길 때
이제 필요없다는 소식 듣고
지금 이 자리에 뒀다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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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강금마을 입구 옹벽에 커다란 고래가 헤엄친다.

고개를 넘어 다무포 윗마을로 향한다. 강사1리의 중심인 강금(江琴)마을로 지형이 거문고처럼 생겼다 한다. 입구 옹벽에 커다란 고래가 헤엄친다. 맞은편으로는 '다무포 고래마을' 간판을 단 3층 건물이 서 있다. 고래마을 조성사업은 작은 다무포가 아닌 큰 강금마을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국비 지원이 중단되면서 사업 역시 중단된 상태다. 지금은 '하얀마을' 만들기가 진행 중이다. 하얀 집들이 많다. 해안의 바윗돌도 희다. 갑자기 하늘이 푸르게 열리면서 비가 그친다. "비가 와서 문 닫아야 하나 했는데." 동네 짬뽕집 사장님이 허탈하게 말씀하신다. 강사리 고인돌은 신령하다.


흰바위처럼 하얀, 해안마을
고래마을 사업 국비 끊겨 중단
450년쯤 된 소나무가 당산목
오래전 마을로 호랑이 내려와
3년에 한번씩 '범굿' 지내기도



강금마을의 북쪽으로 강사2리가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마을 앞에 큰 모래더미가 있었다는 새기마을은 강사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사기(沙基)라고도 불린다. 수령이 약 450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가 마을의 당산목이다. 지금도 해마다 제를 지낸다고 한다. 자전거를 탄 중년의 사내가 당산목을 지나 돌담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까만 눈동자만 드러낸 여인이 서 있다. 푸른 하늘과 함께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새기 북쪽은 송림촌이다. 1.2㎞에 걸친 해안에 흑송이 갯바위와 어우러져 빽빽이 자라고 있다. 험한 바위와 소나무의 절경 속에 데크 길이 놓여 있다. 강금마을에서 스쳤던 도보 여행자가 여전히 힘차게 으르렁대는 파도에도 아랑곳없이 송림촌의 데크길에 오른다.

강금과 새기 사이 긴 해안도로의 한적한 자리에서 바다를 본다. 파도소리뿐이다. 스산할 만큼 한적하다. 이 바닷가에서 3년마다 한 번씩 범굿을 한다. 옛날에는 호랑이가 마을사람이나 가축을 해쳤기 때문에 소를 잡아 굿을 했다. 별신굿의 일종이다. 굿당은 해변에 차려지는데 상에는 소머리와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소머리 양쪽에 식칼 두 개를 꽂았다. 그 밑에는 소나무가지를 쌓아 호랑이가 드나드는 산중을 만들었다. 굿을 한 후에는 호랑이가 내려오다가 먹고 가라고 소머리를 마을 뒷산 중턱에 묻었다. 그리고 다음 굿을 할 때 파보면 소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벅적한 기원의 몸짓들을 상상하며 슬쩍 오늘의 기원을 얹어본다. 신령한 바위든 신령한 나무든 무엇에게든 빌고 싶은, 벌써 가을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20번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타고 포항IC에서 내린다. 31번 국도 영일만대로를 타고 감포· 구룡포 방향으로 간다. 병포교차로에서 왼쪽 호미로를 타고 구룡포를 지난 뒤 925번 지방도를 타고 북향하면 된다. 다무포 마을 버스정류장 뒤편 언덕에 강사리 고인돌이 위치하며 강사2리 마을 안 버스정류정 옆 하천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소나무 당산목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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