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당황스러운 선물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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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4   |  발행일 2020-10-14 제11면   |  수정 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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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맞아 선물이 많이 오고 갔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고향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 택배로 선물만 보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이고, 또 차례를 지내야 하는 추석이니 다양한 식품이 선물꾸러미로 등장했다. 신선도가 유지되어야 하는 만큼 조심스러운 선물이기도 하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날 친구가 포도 한 상자를 선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상자를 열고 포도송이를 들어 본 순간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꼬투리에 달려 있는 포도알 보다 떨어져 내린 알맹이가 더 많았다고 한다. 떨어진 포도알에서 흘러내린 즙으로 상자는 젖어 있었다. 앙상한 꼬투리를 보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보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란다.

생각 끝에 포도 상자를 자동차에 싣고 생산자를 찾아 나섰다. 요샌 농산물 실명제 덕에 생산자 주소를 상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자는 출하 당시에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며 마지못해 다른 포도로 교환해 주었다고 한다.

추측해 보건대 선물을 보낸 사람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는 이름이나 직함만으로도 알 만한 사람이고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단체로 보냈다. 보낸 이는 실제로 포도를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부하직원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고, 가격만 보고 전화로 주문하고 보낼 곳 주소만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

생산자는 보내는 사람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니 좋은 물건으로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전달과정이 늦어져 포도가 상했을 수도 있겠다. 어떠한 경우든 선물을 받은 사람은 황당하다. 그러나 이럴 때 보낸 사람에게 상황 설명을 하거나 생산 농가를 찾아가 바꿔 달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다. 혼자서 그냥 '이런 선물을 왜 보내냐'고 투덜대고 만다.

필자 또한 지난 추석 때 당황스러운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단체카톡방에 선물을 주겠다는 공지가 떴다. 대구 시내 중심가 도로변에 복숭아 상자를 쌓아두고 기다릴 테니 시간 맞춰 받아 가라는 내용이었다. 선물을 받을 사람은 30명이 넘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복숭아 상자를 들고 가는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를 이용하더라도 주변 교통을 방해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정해진 시간에 가져가지 않으면 복지기관에 기부하겠다니 주저하지 않고 기부 의사를 밝혔다. 그 시각에 다른 약속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선물을 받으러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복숭아는 뒤늦게 아파트 경비실로 배달되어 있었다. 선물을 주신 분은 나이 지긋한 분이다. 생산 농가를 돕기 위해 복숭아를 팔아주고, 또 마음을 전하고 싶어 선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지만 받는 사람은 당황스럽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가 기분 좋게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할 사람을 위해 시간을 들여 고르고 정성껏 포장하는 마음은 아니더라도 이처럼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전화 한 통화로 선물을 전할 수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은 이런 황당한 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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