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법·정책 만능의 덫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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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2   |  발행일 2020-10-22 제22면   |  수정 2020-10-22
졸속 임대차3법 부작용 심각
전셋값 68주 상승·매물 실종
시장경제의 물길 틀어막아
'거시 규제' 숙의·공론화 필요
희녕변법 실패 史鏡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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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희녕변법'은 송나라 왕안석이 설계한 개혁정책이자 경제 진흥책이다. 청묘법·시역법·균수법 등 농민과 중소상인을 지원하는 내용을 고루 담았다. 명실공히 친서민 정책이다. 이를테면 청묘법은 상평창(常平倉)에 보관하는 곡식을 춘궁기에 낮은 이자로 빌려준 뒤 수확할 때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희녕변법 시행 후 민생은 더 피폐해졌고 새 제도 도입에 따른 혼란만 가중됐다. 시장의 자율기능과 경제현장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을 도외시한 까닭이다. 왕안석을 지금의 경제부총리 격인 참지정사로 발탁했던 송나라 6대 황제 신종의 부국강병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쇠락해진 송나라는 60년 후 멸망한다.

희녕변법은 선한 정책의 참담한 귀결이자 법 만능의 올가미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아랑곳없이 임대차 3법을 시행한 데 이어 공정경제 3법 등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마치 현대판 또는 한국판 희녕변법을 보는 듯하다. 서민 정책을 표방한 것도, 시장기능을 외면한 탁상공론이라는 점도 빼닮았다. 정부 정책에도 '평행 이론'이 적용된다면 문 정부가 추진 중인 이들 정책 또한 실패의 길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임대차 3법의 경우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 실종, 전셋값 68주째 상승이라는 나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시행한 강사법도 대학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착한 정책이었지만 결과는 어땠나. 시간강사들 절반 가까이 해고됐고, 강좌 수가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이 제약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강사법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 국가에선 정부 정책이 그악스러우면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유연하고 실사구시를 지향해야 한다. 시장가격을 정책이나 법으로 누르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전셋값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임대차 3법은 반시장 정책의 전형이다. 웬만한 건 시장의 수요공급의 법칙에 맡기는 게 자연스럽고 대승적이다. 프랑스 혁명 급진파 로베스피에르가 빵값·우윳값 통제에 왜 실패했을까. 반값 정책이 공급을 위축시켜 되레 가격 폭등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 몰락도 통제경제의 실패가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

법·정책 만능주의는 자유시장경제와의 충돌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의 부정이다. 공룡기업의 독과점과 방만, 투기자본의 발호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다만 그것은 최소화돼야 한다. 시장기능의 도도한 물길까지 틀어막아선 곤란하다.

걸핏하면 법과 정책을 동원하는 습관은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새로운 정책이 야기할 부작용과 폐해를 숙지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지도 않는다. 임대차 3법 같은 거시 규제는 숙의와 공론화가 필요한데도 3일 만에 벼락치기로 국회를 통과했다. 상임위의 축조심의(逐條審議) 과정이 생략됐음은 물론이다. 입안·입법 과정이 부실하니 얼치기 정책이 쏟아진다. '큐피드의 화살'도 금화살을 쏘면 사랑을 부르지만, 납화살을 날리면 증오를 촉발한다. 지금 문 정부는 납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꼴이다. 금화살 같은 신박한 정책이면 누가 나무랄까.

임대차 3법은 정책 입안자의 무능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이뿐 아니다. 임대차 3법을 닮은 정책들이 무더기로 국회 등에 대기 중이다. 마크 트웨인은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문 정부는 희녕변법의 실패를 사경(史鏡), 즉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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