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용동 절터서 통일신라 금동귀면 등 유물 20여점 출토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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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2 15:51  |  수정 2020-10-22 17:03  |  발행일 2020-10-22
폐사지 발국조사에서 통일신라 금동귀면 등 유물 20여점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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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용사 절터 출토 금동제 유물.

경북 경주시 황용동에 있는 황용사(黃龍寺) 절터에서 통일신라 시대 투조 금동귀면 등 금동제 유물 20여점이 출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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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사 절터 서쪽 유구.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중요 폐사지 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지난달 절터 중심 영역 서쪽 구간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이런 성과를 거뒀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 2018년 이곳에서 발굴돼 국내 최초로 확인됐던 투조 금동귀면이 2점 추가 출토됐다.
또 당간(幢竿)의 일종인 금동 보당(寶幢)과 기단, 금동불상 옷자락 조각, 금동사자상, 금동연봉, 금동촛대받침 등이 발굴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굴된 투조 금동귀면은 지난 조사에서 확인된 금동귀면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와 수염 및 귀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동보당과 기단은 당간부와 기단부를 합친 길이가 110㎝로,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길이 73.8㎝의 고려 시대 보당보다 크다.
두 점이 출토된 금동사자상은 길이가 17㎝ 정도이고 앞·뒷다리를 쭉 뻗어 무엇인가를 받치는 모양새다.

경주 분황사 출토품과 자세가 유사해 주로 촛대나 통일신라 시대 등잔의 일종인 광명대(光明臺)를 받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금동연봉, 금동촛대 받침 등 다양한 금동제 유물이 확인돼 창건 당시 황용사의 격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서탑 주변에서 회랑, 건물지, 석축, 석렬(石列, 돌을 일렬로 쌓은 것), 진입부 등 유구도 확인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황용사는 계곡을 따라 석축을 여러 단으로 쌓아 평지를 조성한 후 이곳에 건물을 지은 산지형 가람으로, 기단이나 초석 등이 중복된 것을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돼 조선 시대까지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이곳 절터에서는 석불, 소조불, 용두 조각, 하대석 조각, 명문 기와 등이 나왔고,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조성한 건물지 유적 5동과 탑 터, 축대, 석렬이 확인됐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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