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데우스 엑스 눔무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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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3   |  발행일 2020-10-23 제38면   |  수정 2020-10-23
돈의 神에 엮이지 않고 실력으로 그 결말을 결정해야

스포츠

얼마 전 딸아이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음과 같은 장면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사츠키라는 소녀는 자신의 어린 여동생인 메이가 실종되자 미친듯이 그녀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동생의 종적이 묘연하자 그녀는 결국 손쉬운 해결 방법을 찾기로 한다.

"토토로, 도와줘!" 그녀가 그렇게 외치자 저 멀리서 토토로라는 요괴, 정령, 괴수 등 뭐가 됐든 그런 이상한 존재가 날아오고, 주인공인 사츠키는 그 토토로의 도움으로 금세 동생을 찾는 데 성공한다.

난 거기까지 본 뒤 딸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저 토토로라는 녀석이 아무리 귀엽게 그려져 있다 하더라도 절대 이 이야기가 3류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이건 덴노를 신이라 믿는 일본인들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결말일지 모르겠만, 민주공화국을 사는 한국인에게는 절대 그렇지 않다'까지 나가기에는 딸이 아직 너무 어렸지만.

이야기를 이 따위 방식으로 얼렁뚱땅 봉합하는 것을 고대 희랍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라고 했다. '기계 장치의 신'이라는 뜻인데, 극의 말미에 '빰빰빰~' 하면서 크레인을 탄 신이 등장해 극 중 모든 인물의 신상필벌을 정해 주는 기법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이러한 극의 결말을 작가가 절대 취해서는 안 되는 하수의 작법으로 규정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극은 '주인공'이라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그 결말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절대자'가 그것을 임의로 결정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건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천년 하고도 몇백 년이 지난 뒤 몰리에르라는 천재 극작가에 의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다시 한 번 논쟁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유명한 '타르튀프'라는 극에서 몰리에르는, 당시의 국왕인 루이14세를 극의 말미에 짠 하고 등장시킨다. 기계 장치의 왕(물론 배우가 연기한)이 등장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착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부를 만했다. 타르튀프는 당대의 부패한 귀족과 성직자들을 마구 풍자하고 조롱하는 극이어서 원래는 상연이 어려웠던 터. 그러나 이렇게 국왕의 체면을 세워주는 장면을 넣어주면서 루이 14세의 강력한 응원을 얻어 낼 수 있었고, 결국 그 연극은 흥행에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타르튀프와 같이 아주 예외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대개 조악하고 엉성한 결말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극에서조차 그럴진대 만약 스포츠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더더욱 끔찍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2연패를 노리는 어떤 전설적인 선수에게 갑자기 기계 장치의 신이 나타나 '너의 조국은 국제빙상연맹에 많은 스폰을 하지 않으니, 대신 돈을 많이 낸 러시아의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겠노라'라고 해버린다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또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승리한 펜싱 선수에게 '너는 동양인인 주제에 괘씸하게도 유럽의 백인들이 나눠가지는 펜싱 메달을 따려고 했으니, 그 벌로 너의 1초는 1.57초로 계산해 손해를 주겠노라'라고 해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스포츠는 '선수'가 자신의 '실력'으로 그 결말을 결정해야 한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심판'이 그것을 임의로 결정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그건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부디 앞으로 펼쳐질 모든 스포츠 대회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신들의 실력만큼의 결과만을 받아오길 바란다. 절대 데우스 엑스 눔무스(Deux ex nummus), 그러니까 빌어먹을 '돈의 신'과 엮이지 말길. 영원히.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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