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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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13   |  발행일 2020-11-13 제39면   |  수정 2020-11-13
대구 낙동강 페놀 사건 소환…코로나 극장가 관객 100만명 넘으며 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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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컷.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관객 100만명을 넘어 순항 중이다. 제작사인 더램프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5시8분 기준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집계된 누적 관객 수가 100만110명이었다고. 지난달 21일 개봉했으니 13일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이를 자축하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증샷도 발 빠르게 올라왔다. 1천만 관객을 이야기하던 한국영화였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관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몇 달째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 영향으로 관객 동원력을 갖춘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개봉을 미루면서 몇 달째 켜진 빨간불이 꺼질 줄 몰랐다. 그러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영화표 반값 이벤트와 좌석 거리두기 해제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그 혜택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가장 먼저 받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추석 연휴에 개봉한 '담보'와 함께 지난 8월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100만명 넘게 관객을 동원한 두 번째 영화가 되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토익 600점이 넘으면 대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영어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대기업 말단 8년차 동료인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 이 세 명이 우연히 출장을 간 지방 공장 인근 하천에서 의문의 폐수가 방류되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이종필.감독.in.아저씨(이정범.연출)
이종필 감독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중앙대 사진과를 다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들어갔다. 재학 중 연출한 단편영화 '불을 지펴라'가 2008년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한국의 단편으로는 유일하게 경쟁작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졸업 이후 '달세계 여행' '이제 난 용감해질 거야' 같은 단편들을 꾸준히 만드는 한편 배우로도 활동한다. 강진아 감독의 '백년해로외전'으로 2010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까지 한 그는 이후 한예종 선배이기도 한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에서 노 형사 역으로 장편상업영화 신고식까지 치른 바 있다. '불을 지펴라'가 프로듀서의 눈에 들어 '전국노래자랑' 감독으로 발탁돼 장편영화로 데뷔한 그는 조선 최초의 여성소리꾼을 그린 '도리화가' 흥행 참패 이후 5년 동안 침묵을 지키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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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관객 100만 돌파를 축하 하는 감독·배우들의 인증샷.

봉준호 감독의 '괴물'로 데뷔해 어느덧 16년차가 된 배우 고아성은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 이어 많은 여성과 함께 연대하고 싸우는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다. 전작이 8호실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바깥으로 나가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배우의 매력이 더욱 빛났다.

배우 이솜 역시 정우성에게 마음을 뺏겨 몰래 지켜보던 '마담 뺑덕'이나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시는 걸 소확행으로 여기던 '소공녀' 때와는 달리 사람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옮기는 인물로 분했다.

특히 배우 박혜수는 '스윙키즈' 속 양판례 역을 연기했던 인물이라고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다른 너드(nerd) 캐릭터로 나와 가장 큰 연기 변화를 펼쳤다. 조연으로 나왔던 배우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이는 오태영 상무로 분한 백현진이었다.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기이한 목소리를 뽐내던 화가이자 가수인 그가 어느새 자신만의 인장을 갖춘 배우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모습은 오랜 팬으로 기뻤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엔 '유앤미블루' 출신의 영화음악 감독 방준석이 과수원 사내로 나오기도 하더라.


추석 이후 백만 관객 두번째 영화
단편 제작·배우 활동 이종필 감독
'도리화가' 참패이후 5년만의 연출
수돗물 공포 '환경 10대사건' 다뤄

독성폐기물질 유출 '다크 워터스'
국내외 부도덕한 기업 행태 씁쓸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이 영화가 내부고발과 함께 다루고 있는 실화인 사건이었다.

바로 영화 도입부에 이자영이 목격한 페놀 유출 사고가 그것. 이 사건은 극 중에서는 1995년으로 나오지만 1991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삼진그룹이 아닌 당시 두산그룹 산하 회사였던 두산전자에서 다량의 페놀 원액이 유출되어 대구와 부산을 비롯한 전 영남지역 일대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오염시킨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들이 1990년 6월부터 6개월 동안 무단 방류한 양은 무료 325t에 달했다고.

이 사건으로 시민들 사이에 수돗물 불신 풍조가 높아져 "소독약 냄새 나는 수돗물을 끓여 먹느니 깨끗한 물을 사먹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법 생수 시장과 정수기 사업이 활성화되는 일들이 잇따랐다. 요즘 당연한 듯 사먹는 생수가 바로 이 사건에서 시작된 것. 페놀 유출 사고는 1999년 녹색연합이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100여명의 환경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나라 환경 10대 사건'에서 1위에 선정된 가장 큰 환경사건으로 우리가 마시는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환경문제가 곧 인간의 생존권 문제라는 사실을 아로새겼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종철 선생이 발행인으로 있었던 '녹색평론'이 1991년 창간하는 데도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페놀 유출 사고처럼 물을 오염시키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 MBC PD수첩에서 방영되기도 한 영풍 석포제련소 폐수 유출 사건으로, 제련소 공장 내 지하수와 주변 하천수에서 기준치의 3만7천배에 이르는 카드뮴 농도가 검출되었다는 것이 취재 결과 밝혀졌다. 제련소에서 다루는 아연도 중금속이지만 제련과정의 부산물인 카드뮴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암성 물질,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 생식독성 물질 등 근로자에게 중대한 건강 장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물질"로 분류하는 특별관리물질이다. 페놀 유출 사고로 수돗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한 대구 시민들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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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PFOA) 유출 사건을 다룬 '다크 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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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PFOA) 유출 사건을 다룬 '다크 워터스'가 올해 3월에 개봉한 것을 보면 이런 일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어벤져스'에서 헐크로 분했던 배우이자 열성적인 환경 운동가이기도 한 마크 러팔로의 진심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 오직 이윤만을 좇는 부도덕한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은 더욱 깊어간다.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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