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모로코 사하라 사막(1)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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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7   |  발행일 2020-11-27 제36면   |  수정 2020-11-27
붉은 사하라에서 첫날 밤…인생의 쓴맛·단맛 품은 茶에 취해버렸다
붉은사막 관문 메르주가 가는길
11세기에 만든 지하수로 수백㎞
베르베르族의 지혜 엿볼수 있어
석양 사라지니 하늘엔 별이 총총
모로코 위스키라 불리는 '잇타이'
쌀쌀한 사막의 밤 따뜻하게 녹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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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일몰. 모래에 반쯤 묻힌 태양은 신비한 붉은 빛으로 사방을 물들였다.

아이트 벤 하두를 뒤로하고 부말네(Boumalne)로 향했다. 다데스(Dades) 협곡 입구의 이 마을이 오늘의 숙소였다. 협곡 부근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므로 어둡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40분쯤 달리니 말쑥한 도시가 나타났다. 와르자자트(Ouarzazate)였다. 와르자자트는 마라케시와 메르주가(Merzouga)의 중간에 자리한 도시다. 이곳도 나름 영화의 도시여서 각종 세트장이 즐비하단다. 덕분에 '왈리우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점점 옅어가는 햇살 때문에 이 도시를 들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해가 떨어지기 전에 부말네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작은 도로로 진입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호텔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길이 사라지고 차 한 대 겨우 진입할 만한 비포장 흙길이 이어졌다. 내비는 그곳으로 진입하라고 재촉한다. 내비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대로 들어오면 된단다.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이었지만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좁은 비포장 비탈길을 몇 번 돌고 나니 석양이 걸린 언덕에 그림 같은 건물이 나타났다. 이 나라는 참 예측하기 힘들다. 진입로도 없이 무슨 배짱으로 호텔을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근사했다. 심지어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웰컴티를 건네는 직원의 미소를 보니 모든 긴장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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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족이 만든 지하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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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로 가는 도중에 만난 영화의 도시 와르자자트. 세트장이 즐비한 덕분에 '왈리우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달콤한 민트티가 온몸을 짜릿하게 파고들고, 창밖으로는 겹겹이 겹쳐진 능선의 노을이 황홀하였다. 그 순간의 감각을 무덤덤하게 버터 낼 재간이 없었다. 후다닥 짐을 풀고 능선을 올랐다. 사암이 만들어낸 협곡이 아스라한 지평선을 만들며 자꾸 다가가게 만들었다. 이곳이 바로 다데스 협곡이었다.

다데스 협곡은 약 2억 년 전에 생성된 깊이 500m의 협곡이다. 북쪽으로 다데스 강이 지나면서 하이아틀라스를 칼로 자른 듯이 만들어진 협곡이다. 침식작용이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사람 모양이 두드러져 '인체 언덕'이라고도 부른다. 북동쪽에는 다데스 못지않게 멋진 토드라 협곡도 있다. 붉은 협곡으로 유명한 이곳은 '북아프리카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300m 깊이에 40㎞에 이르는 긴 협곡이다. 근처에는 샘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사는 베르베르족에게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이 샘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알라신을 부르며 이 샘을 통과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스라한 선들을 만들고 있는 협곡의 능선을 휘적휘적 다녔다. 해가 넘어가고 그 선들이 희미해지면서 주위는 선뜻한 어둠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별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등을 미는 바람 속에서 머리에 별을 이고 호텔로 돌아왔다.

상쾌한 공기 덕분인지 일찍 눈을 떴다. 오늘 오후 4시에는 사하라 투어를 시작해야 한다. 부말네에서 사하라 입구 도시인 메르주가까지는 약 250㎞, 최소한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서둘러야 했다. 다데스 협곡에서 메르주가에 이르는 코스는 모로코 자동차여행의 진수를 보여주는 길이다. 아트라스의 험준한 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거침없이 뻗어있는 길은 아프리카 대륙의 야생성을 닮았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붉은 흙벽돌의 마을은 오아시스처럼 이방인을 안심시키곤 했다. 이 광야의 흙먼지 아래에는 붉은 황토가 숨어있었다. 벌레나 짐승들은 땅 밑으로 파고들어 존재의 편안함을 찾고, 인간은 그 위를 쌓아 올려 하늘 가까이로 다가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벽과 벽을 잇대어 기댐으로써 이 황량하고 쓸쓸한 대지를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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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투어를 위해 젤라바를 입고 낙타를 타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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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일몰을 바라보는 작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가로 낯선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마치 굴뚝처럼 생긴 흙더미였다. 궁금하여 근처 가게에 차를 세웠다. 가게 주인 왈, 11세기에 자기 조상들이 만든 지하수로란다. 지하 45m 깊이로 수로를 파서 물길을 끌어왔는데, 이 구조물은 물을 긷는 도르래 두레박을 매단 우물터였던 것이다. 주인은 이곳에서 영화 '미이라'를 찍었다며 앞장을 섰다. 계단을 따라 수로에 내려서니 마치 지하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런 수로가 수백㎞나 된다고 하니, 1천년 넘게 이곳에 터 잡고 살아온 베르베르족의 적응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드디어 사하라의 관문 메르주가에 도착했다. 사하라는 모로코부터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모리타니, 말리, 니제르 등에 걸친 세계 최대 규모의 사막이다.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860만㎢다. 나일강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동서 길이 약 5천600㎞, 지중해와 아틀라스산맥에서 나이저 강, 차드 호에 이르는 남북 길이 약 1천700㎞다. 그 가운데 모로코 동부의 이 사하라에서는 '붉은 모래사막'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사하라는 아랍어로 '사막'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사하라에 붙는 '사막'이라는 말은 췌언이지만 '사하라'가 이젠 고유명사로 굳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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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데스 협곡 입구 마을 부말네의 일몰.

우리는 하실라비드의 핫산네 2박3일 사막투어를 예약해두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핫산네나 이웃한 알리네 투어를 주로 이용했다. 2박3일 코스는 150m에 달하는 모래 사구를 가진 에르그셰비(Erg Chebbi) 지대의 사막 캠프 두 곳을 차례로 찍고 돌아오는 코스다. 사막 경계선에 자리 잡은 핫산네 호스텔은 전통 가옥 형태를 하고 사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풀고 휴대폰을 충전하고 사막에 들어갈 준비를 서둘렀다. 이제 3일 동안 사막이라는 단절된 공간에 고립될 터였다. 백팩 하나로 짐을 추리고, 젤라바를 입고 스카프로 얼굴까지 감쌌다. 사막에서 사용할 우리의 짐은 따로 옮기고, 우리는 낙타로 이동을 했다. 처음 타본 낙타 등은 어색하고 자세도 부자연스러웠다. 양 혹 가운데 엉덩이를 걸치자 앉았던 낙타가 몸을 일으킨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낙타 등은 생각보다 높았다. 멀리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내는 모래 언덕이 굽이치고 있었다. 사하라였다.

10여 마리의 낙타 가운데 제일 앞의 낙타를 배정받았다. 낙타의 걸음에 맞추어 적당한 몸의 리듬을 만드니 낯선 살의 감각도 편안해졌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겹겹의 붉은 모래언덕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낙타 트레킹을 즐길 정도로 여유가 생기며 뒤를 돌아보니 이어진 낙타 무리가 마치 카라반(대상)의 행렬 같았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낙타 몰이꾼 베르베르 젊은이가 낙타 행렬을 세웠다. 낙타를 줄지어 앉히고 우리를 내려 주었다. 사막의 일몰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래 위를 뒹굴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하라를 맞았다. 몰이꾼은 다양한 포즈를 요구하며 멋진 사진도 찍어주었다. 태양은 점점 빛이 약해지며 천천히 모래로 얼굴을 묻었다. 모래에 반쯤 묻힌 태양은 신비한 붉은 빛으로 사방을 물들였다. 왁자지껄하던 주위가 일순 고요해졌다. 나는 그저 먹먹하게 사그라지는 태양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하라를 마주한 '어린 왕자'가 "난 쓸쓸할 때 해 지는 걸 보고 싶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 순간에 왜 온갖 상념들이 이는 걸까. 다른 일행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낙타에 오르니 붉은빛이 사라진 하늘 위로 작은 별들이 하나둘 찍힌다. 낙타 한 걸음에 수백 수천 개의 별들이 돋았다. '어린 왕자'의 고향 B-612 행성도 저 속에서 빛나고 있으리라. 어느새 머리 위 한가득 별을 이고 첫 번째 캠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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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교수

사막에 있는 사흘 동안은 샤워도 못 할 것이고, 쌀쌀한 사막의 밤은 옷을 껴입고 견디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선 터였다. 그런데 첫날 캠프는 깜짝 놀랄 정도로 호사스러웠다. 하루는 괜찮고 하루는 좀 힘들 거라더니 첫날에 시설 좋은 캠프에 들렀나 보았다. 배정된 2인 1실의 텐트에는 푹신한 침대는 물론 샤워 시설이 딸린 화장실과 전기 히터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작은 꽃이 꽂힌 화병과 마들렌을 곁들인 민트 티도 차려져 있었다. '잇타이'라고 부르는 모로코 민트 티는 민트 잎에다 설탕을 가미한 달콤한 차로 보통 웰컴 티로 내놓는다. 주전자를 높이 들어 거품을 많이 내도록 따르는 것은 환영의 의미란다. 또 보통 세 잔의 차를 권하는데, 첫째 잔은 인생처럼 쓰고, 둘째 잔은 사랑처럼 달콤하고, 셋째 잔은 죽음과 온유·평화를 뜻한다고 한다. 종교적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모로코 사람들에게 차는 술과 같은 존재이자 의미였다. 그래서 그들도 민트 티를 '모로코 위스키'라고 익살스럽게 부른다. 별이 총총한 사하라 한가운데서 세 잔의 차를 천천히 음미했다.(계속)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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