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지금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존재하는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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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5   |  발행일 2020-11-25 제27면   |  수정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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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미사여구'로 가득찬, 그러나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난 문 대통령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온 나라가 두 동강 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국민의 신음소리와 원성이 하늘을 찔러도 도대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열망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대통령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의 장막에 숨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1년 가까이 충돌하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오불관언,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치하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원칙 수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 총장을 지휘권·감찰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찍어내려는 추미애 장관을 왜 계속 방치하는가. 장관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균형감, 절제력조차 상실하고, 법·상식·관행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윤 총장 축출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광인을 왜 계속 안고 가는가. 개인 간이든, 조직 간이든 국가기관의 갈등을 관리 통제해야 할 최종적인 책임자는 대통령이 아닌가.

먹고사는 민생 문제의 핵심인 부동산 문제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장담한 대통령이 지금 어디 있는가. 지난 8월 초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 종합 대책의 효과로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달나라 이야기로 국민을 우롱한 후 석 달이 넘도록 어디 있는가. 전국적인 집값 상승에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고, 설상가상으로 여권에서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이 이어지면서 악화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데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에 숨었는가. 문 대통령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말미암아 "정치가 내 삶을 뒤흔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국민들의 분노를 더이상 외면 말고 진솔한 잘못과 적절한 대책을 국민 앞에 직접 소상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대통령은 국가적 대혼란과 첨예한 국민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김해 신공항 백지화 방침이나 월성 1호기 원전 조기 폐쇄 등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철저히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의 백년대계인 주요 사안들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코로나 위기가 있어도 철저히 방역한 채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라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청와대는 "대통령이 입을 열면 갈등이 오히려 증폭된다"고 하지만 대통령 공약이었던 대형 국책 사업이 국가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한다는 것인가.

소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 내편의 이야기만 듣고 상대편의 이야기는 철저히 무시하는 것도 '전 국민'의 대통령은 아니다. 폼 나는 자리에만 나타나고 정작 중요한 국가 현안은 참모에게 떠넘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은 '선한 동기'가 아니라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과연 대통령이 존재하는가?" 청와대는 국민들의 위 질문 역시 못 들은 척 입을 닫아서는 결코 안 된다. 불통의 제왕적 권력은 본인의 불행뿐만 아니라 나라의 불행까지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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