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무능한 정부의 뻘짓, 헛발질

  • 입력 2020-11-26   |  발행일 2020-11-26 제22면   |  수정 2020-11-26
5현제때 '팍스 로마나' 황금기
세습 않고 유능한 황제 옹립
우린 '캠코더 인사' 用賢 실패
부동산 못잡고 전세 폭탄까지
능력만 보고 인재 등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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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로마제국의 전성기는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5현제(賢帝)가 다스리던 시기였다. 서기 96년에서 180년 사이다. 5현제의 마지막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남긴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현세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관례를 깨고 아들 코모두스에게 황위를 세습했다. 5현제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로마는 쇠락의 길로 들었고 폭군 코모두스는 암살당한다.

5현제 재위 때 '팍스 로마나' 황금기가 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5현제는 모두 세습 황제가 아니었다. 원로원이 중심이 돼 가장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물을 황제로 옹립했다. 아우렐리우스가 세습 양위를 하지 않았다면 로마의 영광과 번영이 좀 더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까. 아우렐리우스의 건저(建儲·왕세자를 정하는 일) 실패는 로마제국의 변곡점이었다.

로마 5현제 시대는 능력과 치세(治世)의 상관관계를 실증적으로 웅변한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치세? 아니 난세(亂世)다. 국론은 분열되고 정의와 공정은 실종됐으며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위정자와 관료들의 독선과 무능 탓이다. 급등하는 집값을 잡으랬더니 전세 폭탄까지 안겼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궁색하면 호텔방 임대가 전·월세 대책으로 나올까. 총체적 부실이다. 알토란 같은 주거대책? 기대난망이다.

5주택 이상 보유자는 지난해 말 11만8천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다다. 2017년 12월 문재인정부의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이 주택 수요를 자극했다. 집값을 잡겠다며 헛발질을 한 것이다. 2016년 서울의 전세 비중은 40%였으나 지난 4월엔 68.5%로 급증했다. 갭투자 때문이다. 갭투자를 봉쇄하면 전세 매물이 줄어든다는 건 삼척동자도 예측 가능하다. 하필 그 시기에 임대차 2법(계약갱신 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을 강행해 전세난을 부추겼으니 뻘짓이 따로 없다. 집값 안정이 한시가 급한데 보유세를 올리면서 1년씩이나 시행을 유예하는 여유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택배 노동자 대책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심야배송 제한, 주 5일제 근무, 산재보험 가입 확대 등 그럴싸한 내용을 포괄한 종합대책 같다. 하지만 변죽만 울렸다. 권고 수준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고 문제의 핵심인 인력 충원, 배송수수료 인상은 어물쩍 넘어갔다. 택배 근로자의 노동량과 소득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다. 도식적인 시간 제약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순 없다.

현안과 난제에 대한 해법은 굵고 명료하며 유기적이어야 한다. 한데 정부 대책은 파편화된 데다 쪼잔하고 복잡하기까지 하다. 능력은 없으면서 세기(細技)를 부리는 꼴이다. 페널티킥도 못 넣는 주제에 오버헤드킥이 가능할까. 이쯤 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용현(用賢·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등용함)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용현 실패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에 답이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박근혜정부 인물로 분류되는 정은경을 질병관리본부장으로 발탁했다. 유명희 역시 박근혜정부 때 청와대 외신대변인을 지냈다. 유명희는 2018년 사표를 제출했지만 문 대통령이 반려하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업무능력을 높이 산 까닭이다. 두 공직자의 활약은 코드와 진영을 초월한 탕평인사의 개가다. 조만간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등용할 인물은 오직 능력만 보라. 이들이 정권의 남은 임기의 평가를 좌우한다. '끝까지 무능했던 정부'란 낙인은 면해야 할 것 아닌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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