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무엇이 정책을 결정하는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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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7   |  발행일 2020-11-27 제22면   |  수정 2020-11-27
'정치과잉'에 빠진 대한민국
잘못된 정책 탓 사회 병들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 재추진
法 뛰어넘고 지역갈등 조장
정책을 결정하는 기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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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정책은 정치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정치의 규범적 정의는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오로지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국민갈등의 조정을 등한히 하거나 오히려 조장한다면 정치는 곧바로 변칙에 빠진다.

정책의 평가는 유효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 두 개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유효성은 정책목표의 달성 여부에, 효율성은 정책실행에 따른 물적, 사회적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변칙의 정치는 당연히 정책의 유효성만 따지지 효율성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할 수 있다면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무슨 정책이든 실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치를 불을 대하듯 할 것이다. 화상을 입지 않으려면 지나치게 가까이해서도 안 되며, 동상을 입지 않으려면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안 된다.' 그리스 철학 키니코스학파의 창시자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는 정치의 이중성을 정확히 간파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민중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민주주의란 같은 이름을 쓰지만 지향하는 목표는 너무나 다른 극단적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요즘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정치과잉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치라는 블랙홀 속에 경제와 사회뿐만 아니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문화까지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그러니 정치만능이란 말도 더 이상 과장이 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인간의 삶이 정치와 떨어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사회 모든 부문이 정치에 함몰되는 현상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가치와 이념을 달리하는 집단 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지역 간, 소득계층 간 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정치의 순기능 대신,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 갈등하고 대립하는 역기능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조장한다면 더욱 그렇다. 정치만능에 빠져든 대한민국에 갈등과 분열이 가득한 것은 정치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만 부추기는 정책 탓이다. 최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정치의 승자독식구조 타파를 위해 경쟁과 효율 위에 공존과 협력의 가치를 더하고 제도와 의식을 개혁하는 공감혁명'을 제안한 것은 이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지난 11월17일 김해국제공항 확장안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검증위원회 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경남 지역에선 이미 물 건너갔던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여야를 불문하고 부산지역 의원들은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특별법은 정책의 효율성을 최소한 검증하는 장치인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10조 원 이상 들 것으로 보이는 건설비용을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갈등조장을 넘어 정당한 법적절차까지 뛰어넘는 이 상황에서 오죽하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김해 안이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가덕도를 후보지로 곧장 밀어붙일 수는 없고 수요조사부터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정책을 결정하는가? 누구 말마따나 '붓 바뀔 때마다 그림 바뀌었다'라는 소리를 이젠 그만 듣고 싶다.


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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