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배낭 메고 중미를 가다] '영혼의 고향' 쿠바를 떠나며

  • 유선태
  • |
  • 입력 2020-12-04   |  발행일 2020-12-04 제36면   |  수정 2020-12-04
"Hola" 한마디에 푹 빠져버린 곳…언젠간 다시 만난다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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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말레콘 해변의 밤 방파제는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저기에서 만난 쿠바노들과 럼주와 노래로 벽을 허물며 친구가 되었다.

◆자유를 뛰어넘는 쿠바인의 미소와 친절

설렘을 안고 도착한 쿠바는 나를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으로 반겨주었다. 우리와는 다른 과거와 현재를 가진 그들을 보면서 잘못된 교육과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그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왜곡된 인상을 가지게 할 수 있는지를 실감해야 했다.

혼자 여행하기에는 무서운 곳이라는 사회주의 고정관념이 밴 여행지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쿠바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할 만큼 반전이 큰 곳이다. 쿠바는 현실의 모순과 가치의 혼란 사이를 오가기도 하지만, 즐겁고 흥겨움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쿠바 여행은 기대치를 낮추면 더 행복해지고, 쿠바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출구가 없어서 여행 후유증이 크다고 했던 것 같다.

연중 온화하고 화창한 날씨와 에메랄드빛 카리브해의 바다에는 하얗고 부드러운 백사장이 반기는 해변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든 음악과 춤이 넘치는 라틴문화의 유산 속에 친절하고 순수한 쿠바인들의 미소가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쿠바로 향하게 하는 이유 같았다.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쿠바 사람들의 미소엔 가득한 정이 담겨서 전해온다. 순박하고 해맑은 쿠바인들의 미소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미소 깊은 곳에는 어디서 폭발하는지 알기 힘든 열정이 솟아난다. 그 열정 속에 눈만 뜨면 흘러 나오는 음악에 모두가 춤을 추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보통 사람의 특별한 에너지가 담긴 음악과 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쿠바의 모습이다. 쿠바의 밤들을 모두 점령했던 재즈 카페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언제 어디서든 음악이 흐르고 누구나 춤을 추는 게 자연스러웠던 쿠바의 밤과 그곳에 남아 있을 친구들에게 뜨거운 안부를 전하고 싶다. 자유로운 감성을 한껏 발산하는 쿠바인들의 풍성한 표정과 미소는 쿠바를 누구나가 한 번 다녀오면 잊을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준다.

시간이 허락하면 달려갔던 아바나의 말레콘 해변에서 만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마신 럼주, 카리브해의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방파제 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서투르게 토해내던 언어들로 안녕을 고하던 쿠바인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무척 친절해서 안녕이라는 "올라!" 한마디에 이방인에 대한 벽을 허무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들만의 문화와 명예를 지키며 사는 것 같았다. 장기간 지속된 미국의 봉쇄로 인한 경제난으로 가슴에 뭉쳤던 응어리를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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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 혁명광장에 세워진 쿠바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 청동상.

◆여행자를 유혹하는 혁명의 나라

쿠바를 여행하며 난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설레고 뛰었다. 문득문득 혁명가의 마음이 느껴졌고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도시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정도 원시 모습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 삶을 이어온 고향을 떠나는 사람처럼 불가능한 꿈을 향한 체 게바라의 혁명정신처럼 채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의 쿠바 여행이 내게는 체 게바라와 긴 포옹을 나누는 듯했다.

쿠바는 여느 공산권 국가들과는 결이 다르다. 쿠바의 영웅이자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심장이 아직도 뛰는 뜨거운 땅이다. 혁명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건만 여전히 쿠바는 그를 사랑하고 추억한다. 쿠바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낭만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 그가 사랑했던 쿠바는 훨씬 많은 것을 품은 나라다.


따뜻한 햇살·에메랄드빛 바다
친절하고 선량한 눈빛과 미소
어디서든 음악·춤 함께하는 곳

사회주의 체제지만 자유분방
고전적이면서 활기·낭만 넘쳐
반전 가득한 곳에서 시간여행
체 게바라와 긴 포옹을 한 듯



보고 느끼고 싶었던 체 게바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사르트르가 이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했던 체 게바라를 쿠바의 삶 속에서 만나고 느꼈다. 체 게바라를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그가 썼던 별 달린 베레모를 사서 쓰고, 그가 묻힌 산타클라라 길거리를 누비며 그곳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들에게 체 게바라는 위대한 혁명가의 무게와 거리감 없이 친근한 친구 같은 존재 같았다.

체 게바라는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의사의 길을 버리고 남의 나라 쿠바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카스트로와 생과 사를 오가는 험난한 게릴라전을 통해 마침내 1959년 남미 최초로 쿠바 산타클라라에서 혁명의 깃발을 꽂는다. 쿠바에서 보낸 한 달여 기간이 어느 봄날 손꼽아 기다리던 봄 소풍을 다녀온 다음날의 허전한 기분이었다. 소풍에서 만난 짝꿍 소녀가 가지고 온 사이다를 한 컵 얻어 마신 설렘과 짜릿한 전율을 주는 그런 경험이었다. 쿠바는 시간이 흐를수록 속살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쿠바 여행의 필수 아이템, 체 게바라. 체 게바라의 흔적 찾기는 쿠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첫눈에 매력적으로 시선에 들어온 올드카의 천국에서 혁명가인 체 게바라의 얼굴은 어딜 가나 만나게 돼 떠날 때에는 나에게도 유명한 쿠바 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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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새하얀 백사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해변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흐르지 않는 카리브해의 낭만시간

중미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쿠바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 같다. 낭만과 열정은 폭포처럼 흐르고 있으나 과거보다 더 과거에 머물렀던 미지의 땅에서 오랫동안 보고 싶은 쿠바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났다. 수천 년 동안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연 코발트블루 색깔의 카리브해. 수십 미터를 나아가도 낮은 수심을 유지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해변은 묵직한 감동 그 자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가장 자유분방하고, 고전적이면서 어느 나라보다 활기가 넘치는 곳. 혁명의 땅 쿠바에서 세계에서 가장 귀한 시가를 물고 상큼한 모히토 한 잔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의 해외여행에서 참으로 많은 아름다운 석양을 보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우면서 황홀한 느낌을 주었던 카리브해의 노을은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간 다시 한 번 꼭 오고 싶고, 와야 할 만큼 긴 여운이 남는 쿠바 여행의 깊은 뜨거움이 담겨 있다.

어디를 가도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은 이상할 만큼 풍요로운 행복감으로 차오른 상태였다. 문화와 언어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모습의 이방인에게 거리낌 없이 호의의 시선을 던져준 그들은 참 따뜻했다. 이 새로운 이미지의 쿠바는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나를 충분히 설레게 했다. 열렬히도 삶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현대 문학의 거장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 쿠바는 그 골목마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색깔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삶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는 그들이 건네는 메시지를 쿠바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치열한 삶 속에서 허둥대는 여행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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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돌로 포장된 시내를 걷다 보면 말발굽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여유롭게 이발을 하는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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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거리 골목에 펼쳐진 상점들이 아기자기한 자태로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가를 피우는 쿠바인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성격도 활발하고 낙천적이다. 춤과 음악과 럼주와 함께 또한 시가를 즐기는 쿠바인들은 외국인들을 절대 피하지 않는다. 언제나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다가선다. 스페인어를 몰라도 쿠바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영어 몇 마디에 우리말을 섞어 이야기를 건네면 기쁨에 넘친 얼굴로 응대하는 쿠바인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쿠바의 백지 지도 위에 나는 어느 지도라도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자유롭고 가능하게 무한히 펼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날 수 있는 용기와 머무를 수 있는 자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곳에 위로와 쉼 그리고 자유와 치유를 그리운 여행지에 두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쿠바를 거닐며 세월과 이야기하고, 경이로움을 느끼고, 살사를 추며 생의 감각을 일깨워 보았다. 살아가면서 제대로 가누지 못할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사랑, 설렘과 같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무한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그 분위기에서 쿠바인들의 영혼을 여행자 가슴 깊이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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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버린 시간의 낡은 장소처럼 보이는 아바나는 골목마다 쿠바의 속살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 쿠바에 가면 아바나 골목길 모퉁이에 앉아서 귀환한 나에게 엽서를 쓰던 그때의 나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보석처럼 빛나는 카리브해의 불빛들이 그들의 꿈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희망이 되길….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같은 나라 쿠바는 떠도는 영혼의 고향 같은 곳, 마음 둘 곳 없어 찾아다니는 여행자의 종착역. 여행자에게는 쿠바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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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슴에 새기고 돌아온 쿠바의 보이지 않는 아우성을 전하고 싶다. 쿠바인들의 음악과 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전통과 삶의 지혜가 계속해서 전해지고, 어디를 가도 선량한 그들의 눈빛이 절망에 흔들리지 않기를 염원하며, 영원한 지상낙원을 꿈꾸는 '쿠바노'의 실현 가능한 로망이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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