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교수의 '톡! 톡! 유럽'] 해도가 없는 바닷길 가는 영국…브렉시트의 끝은 '멋진 신세계' 일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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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4   |  발행일 2020-12-04 제21면   |  수정 2020-12-04
19세기 세계를 호령했던 대제국의 기억
경제적 이해보다 그들의 정체성 우선시
잉글랜드-대륙 대립적 관계 인식 강해
유럽 틀 벗어나 '글로벌 영국' 외치지만
美·英연방 '외교 두 기둥' 예전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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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이 왕의 옥좌, 이 홀(笏)을 쥔 섬, 이 장엄한 땅… 이 축복받은 장소, 이 땅, 이 왕국, 이 잉글랜드."

영국이 제국 왕관의 보석이라던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리처드 2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홀은 왕권의 상징으로 왕이 휴대하는 지팡이를 지칭한다. 영국의 국토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보다 약간 넓다. 북대서양 한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섬나라를 작가는 이처럼 장엄하게 표현했다. 영국 초중고 학생들은 최소한 이 한 구절을 자연스럽게 낭송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인이라면 윤동주나 김소월의 시 한 구절이 어렵지 않게 나오듯이.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최초의 나라'라는 이미지다. 17세기에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으로 왕의 권한을 제한해 의회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19세기에는 산업혁명의 절정을 이루었고 지구상 육지 면적의 1/4을 호령하는 대제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부의 40%를 잃었다. 2차대전 후에는 미국과 소련에게, 냉전 붕괴 후에는 미국과 중국에게 강대국의 자리를 내줬다.

어쨌든 영국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나라다. 셜록 홈즈와 007이 있는가 하면, 손홍민 선수가 활약하는 프로축구 프리미엄 리그가 어느덧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보통 유럽 여행을 가면 영국을 먼저 둘러본 후 유럽대륙으로 가서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을 구경하곤 한다. 자주 국제뉴스에 오르내리던 영국이 2016년부터 더 뉴스 메이커가 됐다. 그해 6월23일 영국 유권자들이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의외의 결과라서 충격이었고 이후 영국은 이 문제를 두고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져 극심한 분열에 시달렸다. 안정적인 의회 민주주의의 모국이라던 이미지는 이런 분열 때문에 상당 부분 훼손됐다. 지난 1월31일 EU를 탈퇴한 영국은 오는 31일까지 과도기(이행기)에 있다. 탈퇴 후 EU와 경제 및 비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새로운 관계를 맺든지, 아니면 맺지 못하든지 영국은 유럽연합이라는 경제 및 정치블록에서 벗어난다. 그렇다면 영국을 기다리는 게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멋진 신세계'일까?

2016년 국민투표 직전에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를 단행할 때 경제에 손실이 더 크다고 응답한 유권자들이 절반을 넘었다. 영국 무역의 절반이 가는 EU에서 탈퇴하면 그동안 긴밀했던 경제 및 비경제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기에 당연한 결과다. 실용적이어서 극단적인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영국인들이 그럼에도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정체성을 더 우선했기 때문이었다.

첫 머리에 인용한 희곡의 한 소절처럼 영국은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1066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이 잉글랜드를 침략한 후 영국은 한 번도 외적에게 점령 당한 적이 없었다. 19세기 초와 20세기 중반 유럽대륙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갔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도 이 자그마한 섬나라를 정복하지 못했다. 당연히 영국은 역사교육에서 19세기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비중을 훨씬 더 둔다. 2차대전 후 숙적이던 프랑스와 독일이 화해를 하고 유럽통합을 주도한 사실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2차대전 후 마지못해 유럽통합의 움직임에 뒤늦게 합류했지만 영국인들은 유럽 대륙과 다름을 정체성으로 여겼다. 즉 유럽통합과 잉글랜드의 정체성을 서로 대립적으로 보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에서 80만 명, 루마니아에서 50만 명 등 300만 명이 넘는 EU 시민들이 영국으로 몰려와서 일했다. EU 회원국 간에는 상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본과 사람도 아무런 장벽없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우리가 경상도에서 서울로 이사해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EU 시민들이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포퓰리스트의 가짜 뉴스가 효과를 발휘했다. 유럽통합 때문에 EU 시민들이 몰려와서 정체성이 훼손되기에 이민을 통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주 커졌다. 이게 뜻밖에 브렉시트 지지로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이유다.

영국은 EU의 규제와 '유럽'이라는 좁은 지역을 벗어나 전 세계로 나아가 자유무역과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겠다며 '글로벌 영국'(Global Britain)을 브렉시트 후의 외교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19세기에 대제국을 거느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며.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영국 외교의 3대 축이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 유럽과의 관계, 그리고 영연방과의 관계다. 이 가운데 첫째, 둘째 기둥이 약해졌다. 브렉시트 선거운동을 주도한 보리스 존슨은 현재 영국 보수당의 총재이자 총리다. 트럼프는 그를 '영국의 트럼프'라며 한 수 아래로 봤다. 반면에 내년 1월에 집권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브렉시트를 "역사적인 실수"라고 본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영국이 유럽통합에 적극 참여해 미국과 유럽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미국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런 교량이 노후화한 것이 아니라 아예 스스로 없어졌다. 반면에 영연방은 국제무대에서 정치·경제적 무게가 가볍다. 영연방은 영국을 포함해 현재 54개 국가로 구성됐다. 느슨한 기구로 2년에 한 번씩 정상회담을 열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만 선진국이고 나머지 상당수가 개도국이거나 후진국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브렉시트 후 영국은 "해도가 없는 바닷길을 가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세 개 기둥을 잘 관리해오던 나라가 1·2 기둥을 흔들고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내년에도 여전히 영국은 뉴스 메이커가 될 듯하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선거가 봄에 예정돼 있다. 제1 정당인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연합왕국 영국(United Kingdom, UK)으로부터 독립을 원한다. 스코틀랜드인의 62%가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잉글랜드 때문에 원치 않는 이혼을 당했다. 올해 내내 독립을 원한다는 대답이 오차 범위를 벗어나 7% 정도 앞선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너무 경제에 충격이 가는 강경(경성) 브렉시트를 단행했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배제했다고 스코틀랜드는 여긴다.

2019년 브렉시트 찬반으로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되면서 브렉시트 결정이 잘못됐다고 여기는 유권자들이 지금까지 6% 정도 앞선다. 그렇지만 영국인들은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를 결정했기에 이를 단행해야 한다고 여겨 브렉시트 완수를 공약한 보수당에게 총선(2019년 12월 실시) 승리를 안겨줬다. 실용적인 영국인들이 다시 실리를 되찾아 외교정책에서 첫째, 둘째 기둥을 굳건히 세우기를 기대한다.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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