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청화산(해발 701m)

  • 유선태
  • |
  • 입력 2020-12-11   |  발행일 2020-12-11 제36면   |  수정 2020-12-11
단풍도 눈도 사람도 없는 휑한 계절
구미 군위 의성을 한눈에 품고 왔다
구미는 박곡봉 의성은 용솟음봉
한 비석에 두 이름 나란히 새겨
능선 따르는 등산로 널찍한 편
한뿌리 세갈래 '삼형제松' 눈길
정상 오르니 비안·소보면 아득
호젓하게 즐기기 적합한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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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의성 비안·군위 소보의 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청화산은 구미 쪽에서는 박곡봉, 의성 쪽에서는 용솟음봉으로 불리었으나 지형도에는 청화산으로 표기된 산이다. 한자로는 불 화(火)자를 쓰다가 산불이 잦아 꽃 화(華)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구미 쪽에서 오르면 주륵폭포까지 올랐던 길을 왕복해야 하고, 소개한 코스로 오르면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원점 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산행의 반이 임도처럼 넓은 길이라 힘들지 않은 코스이며, 청산지 주변에 차를 세우면 약 9㎞, 청산리쉼터 주차장에서 시작하면 약 11㎞로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가을이었는데, 앙상한 나목으로만 남은 숲이며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하는 기온까지 겨울을 꼭 닮았다. 어디를 가더라도 단풍도, 눈도 없는 이 계절에 산행 대상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붐비지 않고 호젓한 산행이면 더 좋겠다 싶은 산 하나에 시선을 멈춘다. 평소 숲에 가려 조망이 없겠다 싶어 미뤄둔 산인데 두 조건이 딱 들어맞는다. 구미·군위·의성 경계의 청화산이다. 며칠 사이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코로나 재확산의 분위기 탓인지 청산리쉼터 앞 주차장에는 팔각정과 운동기구만 있을 뿐 휑하다.

청산리쉼터 팔각정 주변에 차를 세우고 마을 앞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1㎞ 남짓한 거리에 청산지를 지난다. 청산지 중간쯤 지나다 왼쪽을 보면 저수지 건너에 농막 같은 구조물이 보이는데 그 지점이 청화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날머리 지점이다. 저수지부터는 비포장 임도가 나있고, 이미 지고 없지만 길 가장자리는 단풍나무가 심겨 있다. 주차장에서 45분을 걸어 안부에 닿는데 의성 구천면 장국리로 넘는 임도 삼거리다. 팔각정과 화장실을 갖춘 넓은 공터에서 왼쪽 '청화산 3.2㎞' 이정표 방향 임도를 따라 올라야 하는데, 좁은 길과 넓은 길 두 갈래 중 넓은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올라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10분 정도 오르면 산지를 개간한 듯 넓은 밭이 일궈져 있고, 백평쯤 돼 보이는 작은 연못이 있다. 밤 사이 떨어진 기온에 연못 전체가 살얼음이 얼었다. 수확하지 않은 감나무에 지빠귀 몇 마리가 빛깔 고운 홍시를 찾아 포륵포륵 날아든다. 임도는 여기까지이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지만 오롯한 능선을 따르게 되는 길은 비교적 넓다. 의성소방서에서 설치한 구조위치 1번 표지를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조금 가팔라지다가 긴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다 오르면 왼쪽에 구조위치 2번 표지와 '삼형제송'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뿌리는 하나인데 세 갈래로 뻗어 자라는 소나무인데 안내판이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삼형제송에서 3분 정도 오르면 구미 방향 주륵폭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정상 1.7㎞' 이정표 방향의 왼쪽 길을 따르는데 4륜구동 차량이 오를 정도로 정상까지 쭉 넓은 길이다. 완만한 능선을 따르다보면 작은 봉우리를 넘게 되지만 힘든 구간은 없다. 삼거리에서 30분쯤 걸으니 정상 30m쯤 못 미쳐 왼쪽에 토끼가 물을 마시는 옹달샘 그림이 그려진 푯말이 있고, 그 안쪽에 움막 같은 작은 천막이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바위틈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모인 옹달샘이 있다. '식수불가'라고 적혔지만 그냥 마셔도 될 만큼 맑은 물이다. 옹달샘을 지나 정상을 오르면 잘 관리된 헬기장 오른쪽에 정상 표석과 정면에 '청화정'으로 적은 현판이 내걸린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으로는 냉산·금오산·황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이고, 북쪽부터 의성 안계·비안면, 군위 소보면 일대의 나지막한 산들이 도열해 있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정상표석 앞에 서니 '안계 12'로 적은 삼각점이 나란히 놓였다. 정상 표석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보인다. 구미를 바라보는 면에는 '청화산 정상(박곡봉)'으로 적고 있고, 의성을 바라보는 면은 '청화산 정상(용솟음봉)'으로 각기 표기를 해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산에서 심심찮게 보는 것이 정상을 선점하듯 각기 다른 표석을 세워놓은 곳이 많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의 표석에 새겨 넣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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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중에 뒤돌아본 정상부의 실루엣.

표석과는 비교도 안 될 통 큰 합의가 있었다. 최근 대구공항 이전지 선정으로 오랜 시간 진통을 겪고 마침내 군위 소보·의성 비안의 공동유치로 합일점을 찾았다. 계획대로라면 2028년 개항이니 머지않아 청화산 상공으로 저마다의 꿈을 실어 나르는 하늘길이 열릴 것이다. 점심을 차려먹고 한참을 쉬는 동안 산객이라고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하산은 오르던 방향에서 팔각정 뒤로 길이 나 있다. 오르던 길과는 달리 능선을 따르는 좁은 등산로인데 낙엽이 지고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처럼 낙엽이 발목을 넘어 정강이까지 푹푹 빠진다. 경사가 조금 가파른 길에는 눈길을 걷는 듯 미끄럽다. 작은 봉우리를 두 번 넘고 정상에서 800m쯤 지난 나지막한 봉우리에 오르니 왼쪽에 전선과 끈을 둘러 막아둔 무덤 한 기를 만난다. 무덤에서 직진하면 땅재로 향하고, 하산은 왼쪽 장군정 방향의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참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수북한 낙엽을 정강이로 걷어내듯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사각거리는 백색소음이 경쾌하다. 50분쯤 내려서니 석재를 두른 진주소씨 묘비가 세워진 무덤 한 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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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길이 선명하지 않아 멀리 보이는 안내 리본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15분쯤 능선을 걷다가 작은 골짜기로 내려서면 오전에 청산지를 오르면서 보았던 농막이 있는 밭에 내려서게 된다. 밭을 지나 내려서니 농로가 가로지르는데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청산저수지 아래에 아침에 올랐던 임도를 만나고, 1㎞ 남짓이면 청산리쉼터 주차장에 닿는다. 산행 내내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고, 산을 통째로 전세를 낸 것처럼 호젓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주차장은 여전히 휑하다.

※산행길잡이

청산리쉼터 주차장 -(45분)- 임도 삼거리 -(40분)- 구미경계 삼거리 -(35분)- 청화산 정상 -(20분)- 땅재, 장군정 삼거리 -(60분)- 농막 -(25분)- 청산리쉼터 주차장 

※교통
중앙고속도로 경유 상주영천고속도로 서군위IC에서 내려 좌회전 약 2.8㎞를 가 회전교차로에서 안계, 비안 방향 28번 국도를 따라 5㎞더 가면 구천 방향 삼거리를 만난다. 923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6km 지점에서 청산교회 방향 청산1길을 따라 마을길로 약 1㎞를 가면 청산리쉼터 주차장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경북 의성군 구천면 청산리 119 (청산리쉼터 주차장)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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