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그들만의 캐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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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11   |  발행일 2020-12-11 제23면   |  수정 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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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변호사

한창 인기 있는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 부유층이 모여 사는 100층짜리 가상의 주거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화려한 세트와 꼭대기에서 보이는 야경에 눈길이 갔다. 볼수록 더 흥미로웠던 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자기들만의 공간에 입성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더 높은 층으로 가고자 벌버둥 치는 인간의 욕망이다.

요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카톡방의 핫한 주제는 다 똑같이 '집'이다. 서울집 팔고 외곽으로 나간 걸 후회하는 사람부터 대출규제에 분노하는 사람, 세금폭탄에 당황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스토리를 시작으로 매번 결론은 '집사기 힘들다' '파는 건 쉬운 줄 아냐'는 식의 한탄으로 끝난다. 대부분 아이가 크면 좋은 학교가 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는 평범한 부모들이다.

얼마 전 이 '집'에 관한 여권 인사들의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발언들이 회자된 적이 있다. 호텔개조를 시작으로 이만하면 살기 좋다는 식의 무개념 발언에, 세대가 같이 사는 감동 운운까지의 공공주택 막말퍼레이드는 시린 가슴을 정통으로 날려 차준 하이킥이었다. 집을 갖고 싶어 하는 백성한테 이거라도 대신 그것도 빌려줄 테니 만족하라는 건 빵 대신 과자 먹음 된다고 했다던 예전 누구의 생각이랑 똑같다. 더 절망스러운 건 200여 년 전 앙투아네트 발언이 무지의 소치였다면 지금의 발상은 아집과 이념, 철저한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점이다.

새 장관후보자의 과거 저서에 실린 발언 중 눈에 띄는 한마디가 있었다. '고령자 보수정당 지지, 주택 가치 상승 기대감 때문.' 이런 논리라면 그가 선거 때마다 지지한 진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집을 안 가지면 된다는 얘기가 된다. 젊은 층이 고령이 되어 보수당을 지지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을 안 가지면 된다.

본인의 소신이라는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확대나 부동산 개발이익 환수와 선거 논리 중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뭐 아직 임명예정인 장관 후보를 두고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사에서 평가기준이 되는 건 과거 행적이다. 평생 소신이라고 쌓아놓은 바탕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중상이상이라고 했다. 부족한 점만 좀 메우면 상위권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이 집값 실험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누구 말처럼 공공주택도 살기 좋다는 식의 반박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넓은 테라스나 창이 넓은 거실같이 각자 꿈꾸는 집이 있다. 맘대로 리모델링도 할 수 없는 공공 주택 빌려주겠다 하면서 여기도 좋다고 강요하는데 수긍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드라마에 나오는 화려한 주거공간에 살고 싶을 수 있고, 다음에는 더 높은 층에 올라가겠다는 꿈을 꿀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출입구부터 승강기까지 전부 막아버렸다.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고 나가려면 목숨 걸고 뛰어내려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나. 사람 욕심 다 똑같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자기들만의 성을 만들고 싶은 걸까. 자진해서 공공주택 살 거 아니면 조용히 해라. 맨 꼭대기에서 야경 내려다보며 세상이 아름답다고 중얼거리던 펜트하우스 주인의 거만함만 느껴진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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