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어느 가족' (2018·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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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18   |  발행일 2020-12-18 제39면   |  수정 2020-12-18
산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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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유독 가족 이야기가 많다. 그것도 어딘가 비밀이 감춰져 있거나 문제가 있는 가족.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 역시 그렇다. 원제는 '만비키 가족'인데, 물건을 훔쳐 살아가는 좀도둑 가족이란 뜻이다. 이 특이한 가족이 길에서 만난 5세 여자아이를 데려오면서 겪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혈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유대감은 여느 가족 못지않게 애정과 따스함이 넘치는 걸 보게 된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일본의 국민배우 기키 기린을 비롯해 릴리 프랭키·안도 사쿠라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 지도에 탁월한(대본이 아니라 말로 대사를 지시한다는) 감독의 영화답게 어린 배우들의 연기도 생생하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부재 혹은 문제가 있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그렇고, '걸어도 걸어도'나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이 그렇다. 여기에는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서전 격인 그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보면 '태풍이 올 때만 유일하게 분주하던 아버지'가 등장한다. 노름에 미쳐서 생계를 돌보지 않던, 대부분은 무기력하게 빈둥거리던 감독의 아버지 이야기다. '어느 가족'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가르칠 건 도둑질밖에 없다"고 말하던 아버지가 아니던가.

반면에 어린 아들은 몹시 총명하다. 역시 감독 자신의 모습이 담겼을 것이다. 총명한 이 아이는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계속 물건이나 훔치며 살다가는 자신의 인생이 엉망이 될 것을 안다. 사랑하지만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떠날 것은 떠나고 끊을 것은 끊는 것. 어두운 부분이 많음에도 특별히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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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일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기를 원한다"고. 원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찍던 감독다운 말이다. 요컨대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삶을 위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 한 편의 영화에서 삶이 혹은 삶을 보는 시야가 바뀌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어느새 거장의 반열에 든 감독의 당찬 포부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한 편의 영화가 조금이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나 역시 꿈꾼다.

한밤중에 깨어 하늘을 봤다. 어느 영국 할머니의 첫 백신 접종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코로나 영향인지 하늘이 맑았고, 평소 보이지 않던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며칠 사이 별자리가 조금 이동한 것 같았다. 문득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늙어가는 건가 싶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한 스캇 펙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말에 따르며 정신적 성장은 평생 계속돼야 한다는 거다. 비록 몸은 늙어가더라도 정신적인 성장은 계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반짝였다. 2020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요 며칠 자주 새벽에 깨어 별을 본다. 오랜만에 삶이 설렌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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