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영남대로…현대인의 구멍난 가슴…그 옛날 과거길에서 '특효약'을 떠올려본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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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25   |  발행일 2020-12-25 제36면   |  수정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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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 벽화 조선시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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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 옆에 있는 현대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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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시장에서 영남대로 가는 길.

초겨울 낙엽이 거리에 굴러다닌다. 도심에도 겨울은 시나브로 왔다. 동아쇼핑 뒤 염매시장에 다닥다닥 붙은 재래식 가게들. 골목 입구 사시사철 뜨거운 어묵, 각종 튀김도 팔고 있다. 염매시장은 옛날부터 떡, 전, 폐백, 제사 음식이 애면글면 유명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찌짐 가게에 사람이 옹기종기 서 있다. 부추, 녹두, 배추, 파전을 즉석에서 굽어낸다. 시장 사람을 빼다 박은 골목상가. 삶의 거울 희로애락이 있는 곳. 우리가 모르는 숨은 진기보물이 많다. 정감 가고 추억을 자극하는 골목을 지나면 현대백화점 뒷골목이다. 초밥집 몇 군데 중 '탱고초밥' 간판을 군눈으로 본다.

탱고는 고흐의 자화상과 함께 나에게 슬픔의 미로다. 애절하면서도 관능적인 탱고 춤과 음악, 탱고의 고향 아르헨티나 라보카 부두, 유럽에서 이민 온 하층민들이 살던 곳, 유럽에서 온 매춘부나 아르헨티나 왔다가 이리저리 매춘부가 된 여자가 괴여 유곽이 생겼다. 그곳에 모여든 남자들이 창녀촌에 드나들고 술을 마셔도 그 막장에는 미쳐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 허무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관능 이전의 슬픔, 춤 이전 음악의 기원을 찾았다.

최초의 탱고는 남자끼리 추었다. 노동자 두 명이 가슴을 맞대고 서로 안은 채 음악에 맞춰 걷는 춤이다. 춤 동작과 아울러 음악도 매우 중요했다. 2박자의 밀롱가, 6박자 발스 음악. 게다가 아름다운 노랫말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했다. 탱고곡 'Tres Esquinas' 가사를 보자. "나는 Tres Esquinas 라는 동네 출신이야, 빈민가의 오래된 불이 등나무처럼 피어나는 곳, 귀여운 앞치마 소녀, 따뜻하고 고요한 밤에 고대 향기가 악을 뒤집는 곳, 그리고 보름달 하늘 아래 농장의 땅이 잠자고 있는…" 이건 차원 높은 시다.


선비의 인품은 마음공부에서 시작
현대인 풍요롭지만 만족할 줄 몰라
2천500년 前 불치병 지금도 존재해

염매시장 갓구운 전과 뜨거운 어묵
희로애락 꾹꾹눌러 만든 초밥처럼
서로에게 정신적인 위로 건냈으면


대부분의 탱고 가사는 마치 신의 언어, 시와 같아졌다. "…당신의 환영을 끌어안고 사랑으로 울어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냥 울게 해다오, …사람은 고통으로 눈이 멀어 버리지, …" 굴 속 100일이면 곰도 곰비임비 사람이 된다는데, 멜랑콜리를 쳐내는 탱고의 강한 스윙, 여러 악기의 하모니, 가슴이 어마 뭉클하다. 우리나라도 탱고 음악이 있다. 비의 탱고, 해변의 탱고. 나의 탱고는? 탱고 초밥은 열정이다. 나를 향해 흐느끼는 그대 눈을, 나의 키스로 감겨 줄 수 있는 탱고 춤과 음악을, 초밥의 맛이 얼마나 닮았을까. 탱고는 서로에게 건네는 정신적인 위로였다. 영남대로로 걷는다.

여기도 약전골목 한약 냄새가 콧잔등을 친다. 한의학박물관에서 뇌리에 각인된 육불치(六不治)가 새삼 살아난다.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 편작열전에, 어떠한 명의라도 고칠 수 없는 6가지 불치병이 있었다. 약 2천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어느 날 제나라 환공이 명나라 편작(扁鵲)을 불러 망진(望診·얼굴을 보고 병을 아는)을 시켰다.

편작이 "숨은 병이 있으니 당장 치료해야 한다"고 환공께 말했다. 환공은 "과인에게는 병이 없소"라 답하고 물러가자 "의원이 이익을 탐해 없는 병을 있다 하여 공을 세우려 한다"고 했다. 닷새 후 편작은 환공을 배알하고 "병이 혈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더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자 환공은 다시 "과인에게는 병 같은 것은 없소"라 했다. 편작은 하릴없이 물러갔다. 그로부터 닷새 후 편작이 환공을 또 배알하고 "병이 위장까지 이르러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환공은 말없이 불쾌한 표정으로 편작을 돌려보냈다. 또 닷새 후 찾아온 편작은 환공의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그냥 돌아갔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환공이 신하를 보내 그 사유를 물었고, 편작은 환공의 병이 깊어 이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후 닷새가 지나 환공은 몸져누웠다. 그때는 이미 편작이 제나라를 떠난 뒤였고, 이후 환공은 죽고 말았다.

이때 편작은 병의 불치 원인인 6가지를 말했다. (1)교만하면 그 병을 모른다. (2)몸을 함부로 여기고 재물만 중히 여긴다. (3)옷과 음식을 적당히 조절할 줄 모른다. (4)함부로 과욕을 한다. (5)체질이 약하여 약을 복용하지 못한다. (6)의사의 말을 믿지 않고 무당의 말을 믿는다. 비록 2천50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적용되는 치병의 잠언이다. 육불치는 치국에도 거푸집이 된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잇는 간선도로였다. '대구서 쉬어가야 문경새재를 넘는다'고 할 정도로 대구는 영남대로의 요지였다. 게다가 경상감영, 서문시장, 약령시가 있어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던 옴니암니 번잡한 곳이었다. 여기저기 벽화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 가는 과거길, 인재와 물류의 대동맥인 영남대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를 전송하는 아낙네, 과거 응시장, 장원 급제자에게 왕이 친히 어사화를 내려 주는 그림….

선비는 학문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학문과 인품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근본이다. 말하자면 자기를 닦고 그 후 남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수기는 자신을 다스리며 완성하는 마음공부다. 맹자는 성공과 명예, 돈과 권력을 탐하면서 정작 소중한 마음을 잃고 찾지 않는 사람들을 질책하고 있다. 학문과 인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고, 마음을 잃었다면 그 마음을 찾아오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맹자의 이 말씀은 오늘날 더 절실하다. 현대인은 마음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풍요로운 물질의 단맛과 통제 없는 심리발달로 양심과 마음이 기형으로 자라 버린 사람들. 마음이 비뚤어 서로에게 상처 입혔기에 작은 일에도 화를 낸다. 그리고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하고, 그 분노를 참지 못한다. 분수를 모르기에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가진 자들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으로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모른다.

무엇보다 살벌한 것은 마음의 잔인성이다. 이 문제는 국가가 개입하여 넘어야 할 큰 장애가 되었다. 고독, 분노사회, 집단적인 우울증, 사회병리 현상이 만연하여 인간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펴도 종국에는 생활이 불안과 불만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위로 대통령부터 아래로 어린이까지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개개인이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는 편안하고 행복한 나라, 올바른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될 수 없다. 국민 전체가 자기 마음 찾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나의 마음은 나의 것이고,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것이다. 모두가 항상 마음을 들여다보고, 텅 빈 마음에 인·사랑·자비로 채우고, 마음의 근본인 첫째, 부끄러워하는 마음 둘째,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 셋째, 양보하는 마음 넷째,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태평성세를 누리는 나라다운 나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럼 서양은 어떠했을까. 고대 그리이스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근자에 나훈아가 노래했다.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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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사 속 테스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입에 달고 다닌 경종(警鐘)이다. 나 스스로를 아는 것이 모든 선한 일의 출발이라고, 자신을 모르는 자는 착각과 잘못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너 자신을 알라'가 바로 수기치인의 수기가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지금 우리나라를 본다면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하다. 그럭저럭 명나라 두사충의 이야기가 서린 뽕나무 골목까지 왔다. 이순신 장군이 그와의 깊은 친분을 나타내는 '봉정두복야'라는 한시를 남겼다. 그 와중에서도 '너 자신을 알라'는 소리가 딸랑딸랑 방울소리를 내면서 나를 깨우고 겨울 속으로 떠난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방방곡곡트레킹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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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시장 골목 입구.

●문의: 대구시관광협회 (053)-746-6407
●주소: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15길 49
●트레킹 코스: 염매시장 - 골목길 - 영남대로 - 계산성당 후문
●주위의 볼거리: 청라언덕, 구 제일교회, 한의학박물관, 진골목, 경상감영, 달성공원, 김광석거리, 서문시장 야시장, 두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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