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영남일보 문학상] 詩 당선작 - 설현민 '해감'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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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01 08:30  |  수정 2021-01-01 08:39  |  발행일 2021-01-01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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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 作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

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

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

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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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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