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안길 '테이스팅 테이블'… 크림 범벅 까르보나라는 "NO" 소스의 농밀한 기운만 남긴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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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발행일 2021-01-08 제34면   |  수정 2021-01-08
탄맛 없이 마늘향만 강한 '알리오 올리오'
계란노른자 절묘하게 코팅한 '까르보나라'
"원칙대로" 현지 파스타의 맛 전해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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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셰프가 자랑스럽게 내미는 '알리오 올리오'와 '까르보나라'. 까르보나라도 크림 범벅이 된 여느 식당과 달리 계란 노른자를 잘 버무려 면에 살짝 코팅만 시켜놓은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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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안길 '테이스팅 테이블'의 오너셰프 김연아. 고집스럽게 현지 버전에 가장 가까운 덧칠되지 않은 미니멀한 메뉴라인을 그려낸다.

◆테이스팅 테이블 김연아 셰프

2010년 봄. 그 어름 수성못 들안길엔 두 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자릴 잡는다. '나폴리'와 '테이스팅 테이블(Tasting table· 이하 티티)'. 나폴리 주방장 조르주씨는 대구에 이탈리아식문화를 전파하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존속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티티의 여사장 김연아. 억척스러움이 묻어난다. 살아남기 힘들다는 그 레스토랑을 10년 이상 붙들고 있으니…. 인내력과 열정이 얼굴과 손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경북여고 시절, 전가복 등 중식 요리를 잘 만들어냈다. 대구 가톨릭대 영양학과를 졸업한 뒤 막연하게 남아 있는 이탈리안 푸드 전문가의 길을 위해 간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토리노시에 설립된 ICIF( 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 입학한다. 서울로 왔지만 뭔가 미진했다.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프로 셰프 양성 요리학교인 '아따볼라 꼰 로 셰프('셰프와 함께하는 식탁'이란 뜻)'에 들어간다. 그때 이탈리아 요리 용어를 숙지하게 된다. 우린 툭하면 불맛과 비린네 제거를 위해 독주를 붓고 불쇼를 즐긴다. 하지만 이상하게 현지에선 그런 광경을 접할 수 없었다.

◆덧칠 파스타 거부

지역 마니아 사이에선 그래도 가장 이탈리아 현지 파스타의 기운을 원형대로 전해주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식재료가 고성방가를 질러대는 퓨전 파스타에 대해서는 단호히 '노'라고 선을 긋는다. 레시피랄 게 없다. 그냥 원칙대로, 그리고 제철 식재료의 물성이 실시간으로 살아 있게 프라이팬에 오른 각종 올리브오일과 치즈와 크림, 채소와 해·축산물의 물성을 교향곡처럼 섞어준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우렁찬 메뉴에 혹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의 손금을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주재료는 덜 가공되게 부재료는, 가령 소스 같은 건 최대한 농밀한 기운을 추출해 낸다는 것.

◆마늘향만 남기는 알리오 올리오

하지만 화끈하고 얼큰한 맛에 길들여진 대구의 정서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마늘맛이 주인 행세를 하는 '알리오 올리오'의 경우 식용유의 끓는 점과 마늘이 익는 것과 타는 경계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맛의 스펙트럼을 저울질 하며 요리를 한다. 무엇이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를 확실히 하고 싶어한다. 타버린 마늘은 뜨거운 오일과 결합되면서 불편한 맛을 파생시킨다. 그 전에 적당량의 물을 섞어 가열된 마늘을 식혀주면서 최적의 맛이 유지되게 해준다. 이런 감각은 레시피북에 나오지 않는다. 주방에서 수백 차례 수천 차례 반복되는 과정에 어떤 깨달음처럼 셰프에게 다가선다. 그 감각의 총합체가 바로 여러 식재료를 섞어 프라이팬에 얹어 믹싱해주는 과정인데 이를 '만떼까레'라 한다. 계속 익히며 걸쭉하게 만들어주고 마지막엔 불을 끄고 찬 공기와 접촉시켜 끈적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10년차 이상의 중식 전문가의 웍 놀림과 같은 경지다. 리조또의 경우 특유의 걸쭉함을 죽과 동일하게 여겨선 안 된다.

초창기 파스타 맛의 핵심이랄 수 있는 '알덴떼'에 대한 시각차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다들 덜 익은 상태로 이해하는 데 실은 익은 상태에서 푹 퍼지지 않고 좀 고슬고슬하게 뜸을 덜 덜이는 과정이다. 손님들은 '덜 익었다, 밀가루 냄새가 난다'면서 투덜댔다. 데체코사의 스파게티 건면의 경우 보통 11~12분 삶으라 권하는 데 그녀는 1분 정도 덜 삶는다. 크림소스가 전면으로 나오는 까르보나라의 경우 다른 파스타보다 좀 더 삶아준다. 모두 최적의 씹힘성을 위한 배려이다. 여기 까르보나라는 최적 상태인 것 같다. 풀어놓은 계란노란자가 면에 잘 붙어 있게 절묘하게 저어줘야 한다. 초짜 셰프는 그게 힘들어 대충 계란을 수란 형태로 올려줘버린다.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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