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읍 '이태리제면소', '아빠가 쏟아버린 오징어 먹물…' 친근한 한글 메뉴에 넉넉한 인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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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발행일 2021-01-08 제35면   |  수정 2021-01-08
비위생적인 주전자 대신 개인별 생수병 제공
들깨크림·해물상하이…메뉴도 간판도 한글
"고객 원하는 것이 정답" 대중적인 맛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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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제면소 화덕에서 구워낸 피자와 '아빠가 쏟아버린 오징어먹물 빠네 새우 로제 파스타'. 햄버거 빵의 뚜껑을 열면 방금 쏟아진 듯한 면발의 행렬이 눈웃음을 짓게 만든다.
◆ 화원읍 이태리제면소

달성군 화원읍에 가면 '이태리제면소'가 있다. 대장 셰프격인 김동현은 이제 마흔 초입에 들었다. 경북고를 나온 그는 계명대 어문학부에 들어갔지만 자기한테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미래가 극도로 불안했다. 설상가상 10여년 동인동찜갈비골목에서 동해 찜갈비를 운영하던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몸이 좋지 않았다. 장남인 그는 학업 대신 돈벌기 전선에 나선다. 달서구 상인동에 있었던 한 유명 갈비탕 체인점 풀타임 서버로 뛰었다. 생애 처음으로 입에 단내가 났고 쪽잠의 나날이었지만 일상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점장이 되었고 본사의 생산공정도 익히고 나중엔 총무과장까지 된다.

이어 수성못 근처 뉴욕뉴욕 레스토랑과 링크된 레스토랑 '나의 아지트 뉴욕뉴욕' 오픈업무를 관장한다. 10여년 세월동안 기본적으로 식당이란 게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흥하고 망하는 조건들을 직접 필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독립할 근육을 축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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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과 패스트푸드, 경양식당 등을 통해 국내 유통 식재료의 허와 실을 간파한 김동현 '이태리제면소' 사장. 그는 가장 한식스러운 이탈리아 음식을 표현해내고 싶어한다.
30대중반, 독립을 결행한다.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화원읍에 제대로 된 생면 파스타와 피자 전문점을 차리고 싶었다. 다들 영문 간판을 즐겼지만 순우리말 간판이 대세란 걸 알고 한국적 이탈리아 식당 같은 느낌을 주게 이태리제면소라 정한다.

다른 직장에 있을 때 그만의 비망록이 있었다. '이럴 경우 나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적어놓았다. 상당수 길쭉한 주둥이 스테인리스스틸 주전자는 세척 사각지대가 많아 외의로 비위생적이란 사실. 그래서 그는 지금 개인별로 작은 생수병을 내민다. 잘 썩는 친환경 종이컵을 내놓았다. 그는 외식업을 '휴먼사업'이라 여긴다.

2014년 오픈하기 전에 일단 성공한 외식업자 관련 책을 독파했다. 음식이 맛없다는 사실. 이건 기호식품인 음식인만큼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일단 자신의 원칙에 맞게 요리했는가를 직접 먹어보고 체크하고 그것에 문제가 없다고 하면 손님이 원하는 대로 다시 요리해서 갖다준다.

상당히 대중적인 맛을 설정했다. 그리고 가능한 푸짐하고 풍성한 느낌이 들게 요리했다.

조리장 노재원 등 주방 멤버는 5명. 면은 즉석에서 뽑은 생면 위주, 옆에 피자 굽는 화덕이 있다. 가장 인상적일 것 같은 '아빠가 쏟아버린 오징어 먹물 빠네 새우 로제파스타'를 주문했다. 먹물빵은 매일 주문제작하는 빵집에서 공급한다. 햄버거빵의 일종인데 뚜껑을 열면 파스타가 쏟아진 상태로 세팅돼 있어 손님이 그걸 보며 빙그레 웃는다. 지오네처럼 생면파스타를 고집한다. '이탈리아짬뽕' 같은 '해물상하이파스타', 들깨칼국수 버전으로 태어난 이태리 품은 '국산 들깨 크림파스타'…. 메뉴이름마다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다. 생토마토소스도 당일 내린 것만 올린다. 인상적인 게 또 있다. 셀프주문서이다. 메뉴 번호, 맵기 정도, 수량 등을 직접 체크하게 했다.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2017년 7월 채널A '밥싸는 남자들' 10회편에 소개됐다.
글·사진=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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