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수동 '남자의 부엌', 시금치 빠네…마늘종 봉골레…우리 입맛에 맞는 '한식 파스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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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발행일 2021-01-08 제35면   |  수정 2021-01-08
프랜차이즈 알바부터 점장까지 수년간 경험
푸짐하게 먹는 '한식당 같은 파스타점' 운영
먹는 이 위로하는 감수성 어린 글귀도 가득

4패스저장
남자의 부엌 시그니처 메뉴인 '시금치 치즈 빠네파스타'. 치즈의 느끼함을 덜기 위해 시금치를 믹서에 갈아 섞었다.

◆욱수동 '남자의 부엌'

대구와 경산의 경계에 자리한 욱수동의 2013년, 다소 황량했던 한 도로변 건물을 찜해 파스타 전문점을 차린 김대웅 사장. 그 사내는 쪽지글 적는데 이골이 나 있다. 통유리창마다 사람의 눈길과 마음길을 끄는 한편의 시 같은 글귀를 직접 짜내 적거나 책, 인터넷 등을 검색하다가 아, 싶은 문구라 싶으면 손수 적어놓고 본다. 그의 슬로건은 힐링과 환대. '외로움은 팔지 않는 남자의 부엌입니다'. 남은 피자를 싸줄 때 사용하는 누른 봉투 겉면에도 감수성 어린 글귀를 적어놓는다. 얼추 1만장을 손글씨로 적어 단골의 심장에 넣어주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 벽에도 수백여 장의 엽서가 낙엽처럼 매달려 있다.

시내 동아양봉원 근처에 진출한 롯데리아 봉산점에 들어갔다. 대구에 맥도날드가 진출하기 직전이라 연일 상종가를 쳤다. 그는 거기서 4년 머무르는 동안 알바 직원에서 시작해 특유의 아이디어와 성실함에 힘입어 점장에 까지 올라간다. 그는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용납되지 않는 영업전략 가이드라인에 변화를 유도한다. 근처 로데오, 야시골목 가게 주인들도 단골로 끌고 들어오기 위해 직접 판촉용 각티슈를 들고 매장을 방문했다. 일반 저렴한 티슈는 별로 소용이 될 것 같지 않아 줄 거라면 제대로 된 걸 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상당히 적중해 좋은 평점을 받는다.

롯데리아에서 나와 미국발 패밀리레스토랑인 베니건스 동성로·황금점으로 이적한다. 베니건스는 아웃백, TGI 프라이데이와 함께 경쟁구도를 이룬다. 외국계 다국적 외식브랜드인 만큼 직원인사고과 평점시스템은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상위라인으로 승진하기 위해선 승급시험을 봐야 했다. 점장이 되려면 5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규칙과 규정집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2년여 만에 점장이 된다. 그는 회사보다 고객한테 더 올인했다. 한 명한테라도 클레임이 걸리면 그는 그날 종일 굶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바닥에 무릎을 꿇기도 했다. 하지만 더 윗라인으로 가는 건 정치력이 작용된다는 걸 절감한다.

두 곳에서 기본기를 배워 아는 셰프 후배와 동성로와 범어네거리에서 파스타점을 오픈한다. 이때 개업을 알리기 위해 근처 주요 빌딩의 업체를 직접 찾아 정중하게 쿠폰을 돌렸다. 매장이 비좁아 대기 멤버가 많아지자 바로 옆 커피숍과 자매결연을 하고 기다리는 손님이 거기서 커피를 먹을 수 있게 했다. 이 모든 게 발상의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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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수동 파스타 전문점 '남자의 부엌' 김대웅 사장. 10여년 롯데리아, 베니건스 점장의 경력을 통해 기본기를 다진뒤 3대가 함께 앉아 훈훈하고 편하고, 식재료의 기운이 그대로 살아 있는 퓨전 파스타류를 특화시켜 주목을 끈다.

완전히 독립을 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양식당 계열에서 일을 했기에 자신도 파스타 제대로 하는, 그렇다고 너무 마니아를 겨냥한 고급스러운 버전은 아니고 가족끼리 나들이 오듯 찾아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한식당 같은 파스타점을 구상한다. 일단 주변 아파트촌 여성들의 여심을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상호도 남자의 부엌으로 결정한다. 개업을 알리기 위해 한 대행사를 통해 주변 아파트관리사업소를 방문, 개업 편지글을 아파트관리비 고지서와 함께 입주자한테 전해지도록 했다.

파스타에 집중했는데 이탈리아 현지 정통파스타에서 조금 벗어나기로 했다. '한식 같은 파스타 시대'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시금치치즈빠네파스타, 불고기토마토파스타, 참나물파스타, 차돌박이리조또, 돈가스파스타, 마늘종 봉골레 등이 라인업을 형성한다.

직원들이 제안한 메뉴도 중시한다. 그걸 '독학파스타'로 명명했다. 그중 경상도 남성들의 얼큰한 입맛을 위해 '아빠의 꿈 파스타'도 개발했다. 물론 그 깔판에 먹는 이를 위로하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빠네파스타도 정말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적당한 식기를 찾아 서울 주요 주방용품점을 돌아다녔다. 디저트류와 메인음식이 앙상블을 이룬 키조개 모양의 접시를 구입했다. 차돌박이리조또에 맞는 뚝배기도 찾아냈다. 그 뚝배기는 너무 바닥에 가라앉으면 식감이 덜하기 때문에 3㎝ 굽을 가진 나무 깔판 위에 올려놓았다.

맛보다 건강, 음식 본연의 맛에 더 치중한다. 생면도 낼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건면에 대한 감수성이 더 높아 생면은 일단 유보. 근처 경산점에는 곤드레나물로 만든 파스타가 시그니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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