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청송 월매봉(해발 881.8m)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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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15   |  발행일 2021-01-15 제36면   |  수정 2021-01-15
사람의 흔적 사라진 雪山…짐승의 발자국이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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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봉은 보현지맥 보현산·면봉산과 능선이 이어지는 한 봉우리다. 내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협곡의 산세로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칼데라 지형의 표본이 된다. 능선은 대부분 참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당히 눈도 내리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게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일 것이다. 등산에서도 산정에서 펼쳐지는 눈꽃이며 설경을 눈에 담는 꿈을 꾸며 겨울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 마침 때가왔다. 대구 근교에 큰 눈은 아니었지만 두어 차례 눈도 내렸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산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다만 붐비지 않고 한적한 곳을 찾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제격이겠다 싶은 산을 하나 찾았다. 보현지맥 면봉산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상의 봉우리인 월매봉이다. 들머리가 되는 월매3교 부근 공터에 차를 세우고 200여m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거대한 절벽 아래에 자리 잡은 용암사가 있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듯 협곡을 이루는 모습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의 위용이다. 주차장 한편에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면봉산에서 월매봉 일대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속한다는 안내문이다.

면봉산 칼데라(caldera)는 화산 폭발로 마그마가 지표면으로 올라와 마그마가 고여 있던 지하에 빈 공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마그마가 지지하고 있던 위쪽 땅이 무너지면서 솥 모양의 칼데라 지형이 만들어졌고, 이곳 칼데라는 침식작용으로 경계부분이 모두 사라지고 현재 그 뿌리만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인증기간은 2017년 5월5일부터 2021년 5월4일까지 4년간으로 2020년 재인증 평가가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됐다. 안내판 앞에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온몸이 얼어붙는다. 차에서 내릴 때 기온이 영하 12℃를 가리켰고 아직 햇살이 퍼지지 않은 좁은 협곡으로 몰아치는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족히 영하 20℃는 될 터.


보현산·면봉산과 이어진 능선
하늘 향해 입을 벌린듯한 협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모처럼 맞이한 겨울다운 겨울
휘몰아치는 바람에 '오들오들'
배낭 속 물도 서서히 얼어붙어
멧돼지가 앞장선 길 따라가니
난코스만 비켜서 어느새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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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듯한 협곡 사이에 자리잡은 용암사.

용암사 정면으로 보이는 바위봉우리를 올라야 하는데 절벽에 눈이 덮여 있어 위험하겠다는 판단으로 바위 구간은 돌아가기로 한다. 계곡을 따라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라 50m쯤 걸으니 오른쪽에 간단한 개념도를 그린 면봉산 등산안내판이 있다. 10m쯤 앞쪽 오른쪽 길섶에 안내 리본 몇 개가 보이는데 이곳으로 올라야 절벽으로 오르는 구간이지만 그냥 지난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 위로 고양이과 짐승으로 보이는 것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고 10분쯤 임도를 따르니 사방댐을 지나 오른쪽에 '월매봉 1.65㎞'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계곡 쪽에도 안내판이 있어 쌓인 눈을 쓸어내니 '등산로 아님'으로 적혀 있다. 햇살이 드는 곳까지 빨리 올라야겠다는 생각으로 계곡을 벗어나 사면을 오른다. 작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발판만 있는 계단 길 중간쯤 오르니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작은 지능선길을 걷는다. 입김에 마스크가 얼어 턱에다 걸쳤다가 바람이 정면이다 싶으면 다시 올리기를 반복한다. 보통 20분 이상 걸으면 몸에 열이 올라 겉옷을 하나 벗고 싶어지는데 능선이 가까워지자 바람 때문에 오히려 더 껴 입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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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따라 곧게 나있는 멧돼지 발자국. 멧돼지가 앞장선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계곡을 벗어나 꼭 30분 만에 무덤 한 기를 만나는데 양지 바른 곳이라 잠시 쉬어가려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두꺼운 장갑을 하나 더 끼고 무장을 재정비하고 다시 오른다. 입구에서 보았던 협곡은 아니지만 경사가 가팔라 속도가 느려진다. 잠시 쉬면서 배낭 옆에 꽂아둔 물병을 꺼내니 살얼음이 서걱거린다. 혹한기에 물병 입구가 얼어버린 경험으로 마개가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꽂아 두었는데도 서서히 얼어들어가는 기온이다. 40분쯤 더 오르니 입구 절벽 구간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 오롯한 능선 길을 걷게 된다. 여전히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길 위에 멧돼지 몇 마리가 등산로를 따라 먼저 올랐다. 멧돼지가 앞장선 길을 15분쯤 오르니 월매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생뚱맞게도 무덤 한 기가 자리 잡고 있고 왼쪽에 이정표가 서 있고 나무에 손 글씨로 면봉산 881.8m로 적은 푯말과 허물어진 삼각점이 눈에 덮여 있다. '면봉산 정상 4.8㎞'로 적은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잠시 가파른 내리막이다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여전히 멧돼지가 앞서간 길을 따르는데 어쩌다 발자국이 등산로를 벗어났다가 다시 등산로 위에 찍히기를 반복하는데 아무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르게 된다. 가만히 보니 멧돼지가 옆으로 비켜간 길은 바람에 몰려 깊이 빠지는 눈길만 돌아간 것이다.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기 위해 능선에서 살짝 내려선 것 이외에는 계속 나란히 걸었다.

주로 참나무가 자라는 능선인데 간혹 숫자를 적은 푯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입구에서 보았던 풍력단지 반대 현수막이 떠오른다. 아마도 월매봉과 면봉산 일대에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측량이나 조사를 한 흔적이 아닐까 싶다. 숲 사이로 멀리 면봉산 정상의 기상관측 시설물과 그 뒤로 보현산의 천문대 태양광 망원경 건물이 보이긴 하지만 어디 한 곳 탁 트이는 곳이 없다. 바윗길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맞은편 월매남봉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안부에 닿아 정면의 월매남봉을 오를 것인지 아니면 왼쪽 계곡으로 하산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하는데 바위 구간이 많은 능선은 위험하겠다는 판단으로 계곡을 따라 하산 길을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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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10m정도 지점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계곡을 왼쪽에 두고 희미한 길을 찾을 수 있다. 계곡을 여러 번 가로지르는 길이지만 계곡 중심에서 몇 미터 벗어나지 않는 길이고 자세히 살피면 일정한 간격으로 주황색 끈이 묶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쯤 내려서니 계곡 왼쪽에 철재 기구들이 널려 있는 건물터가 있다. 무언가 가공을 하거나 정미소에서 볼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이 보인다. 건물터를 지나면 길은 더욱 선명해지고 30분을 더 내려서면 오전에 올랐던 '등산로 아님' 안내판 앞이다.

반갑게도 사람의 발자국이 찍혔다. 동행한 후배와 단 둘이었는데 이 지점까지 두 명이 왔다가 되돌아간 발자국이다. 하루 종일 처음 만나는 사람 발자국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용암사다. 오전에 햇살이 들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용암사에 햇살이 남았지만 여전히 영하권의 기온이다.

대구시산악연맹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산행 길잡이

용암사 주차장-(15분)-사방댐 갈림길-(35분)-무덤 1기 지점-(50분)-월매봉 정상-(50분)-안부 삼거리-(20분)-건물 터-(30분)-사방댐 갈림길-(15분)-용암사 주차장

◆월매봉

월매봉은 보현지맥 보현산·면봉산과 능선이 이어지는 한 봉우리다. 내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협곡의 산세로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칼데라 지형의 표본이 된다. 소개한 코스를 따르면 약 6.6㎞, 월매남봉을 돌아 내려오면 약 8.5㎞로 4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교통

대구포항고속도로 임고하이패스 요금소에서 내려 좌회전, 영천댐을 지나는 69번 지방도를 따라 죽장면소재지까지 간다. 죽장면에서 좌회전으로 31번 국도를 따라 약 13㎞를 가 눌인리 삼거리에서 좌회전으로 용암사 이정표를 따라 약 5㎞를 가면 된다.

◆주소

경북 청송군 현동면 개일월매길 736-54(용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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